‘하늘’, 천(天)과 공(空)의 미묘한 차이

노들 영산

‘하늘’, 천(天)과 공(空)의 미묘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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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하늘’을
나타내는 글자(그 중 가장 자주 쓰이는..)는 두 가지가 있죠.
바로 ‘천(天)’자와 ‘공(空)’인데요, 이 한자들이
얼핏 보면 같은 뜻의 글자일 것 같아도 속을 파고 보면 좀 다릅니다. 반대로 달라 보여도 의외로 같은 뜻을 공유한다고 생각될 수도
있고요.

물론 두 한자의 뿌리는 다르죠. 天자는 大자에 一자를 위에 덮은 글자로 ‘니 대가리
위’라는 상황을 나타낸 지사자고요, 空자는 구멍(穴)을 뜯어 보니(工) 비어 있었다(空)는 형성자입니다. 空자는 당연히 처음부터
‘하늘’이란 뜻을 가지고 출발한 한자가 아니겠죠? ‘비어 있다’라는 형용사에 출발해서 ‘빈 곳’=’하늘’이라는 의미가 파생된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이런 두 한자의 차이가 뉘앙스와 실제 사용되는 양상에 간격을 크게 벌려
놓았습니다. 일단 일본어를 하실 수 있는 분들은 이 한자를 뜻으로 읽어 보세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하늘’의 뜻인 ‘소라[そら]’라는 말에는 空자만 붙지 않습니까. 정작 天자를 훈으로 읽으려고 치면 ‘아마[あま]’라는 다른 단어를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일본어가 아니더라도, 이 글자들과 호응하는 다른 글자들을 찬찬히 살펴 보면 좀 특이한 사항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예시를 들어 보죠.

空자랑 붙은 글자는 공중, 공군, 공해, 대공기, 공항 등인데,
모두 ‘인간의 개척 대상으로서의 하늘’이라는 의미를 속에 담아 두고 있습니다.
반면 天자랑 붙은 글자는 천사, 천국,
천자, 황천, 천운 등이 있는데, 이것은 ‘신령님의 하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정리를 하면,
天자는 ‘니 대가리 위’→’너보다 높은 존재’→’신령님’→’하느님’이라는 의미의 변용 과정을 거쳐 ‘하늘’이라는 뜻이 나온 거고,
空자는 ‘빈 거’→’뻥 뚫린 거’→’뻥 뚫린 하늘’→’우리가 갖고 놀 만한 하늘’이라는 뜻이 나왔다는 말이 되는 거죠. 왠지 天자는
동양적 자연관의 하늘, 空자는 서양적 자연관의 하늘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적인 모습의 대비라고 해도 될까요.
과학과 신앙은 다른 영역이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사실 이건 이름에 天자가 들어가는 친구들의 이름은
소라[そら]라고 읽는 경우가 전혀 없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봤더니 이런 식이더라고요. 실제로 일본어에서도
天자가 들어가는 경우는 ‘신’의 의미를 함축한 경우가 많고, 空자가 들어가는 경우는 ‘공백지’, ‘개척 대상’의 느낌이 많이
풍기더라고요. 하지만 재미있는 건 바로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이죠.

천공(天空)의
에스카플로네

결국 우리네가 느낄 수 있는 하늘은 天이나 空이나 마찬가진데,
왠지 나눠 봐야만 하는 강박 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대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정해야 할까요? 이런 생각을
계기로 한 물체나 사람의 모습을 단면으로만 보지 않고, 양면으로 볼 수 있는 융통성을 길렀으면 좋을 것 같네요.

이상 영산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