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클라나드의 후일담인 클라나드 애프터 스토리의 방영이 끝난 2009년 4월에 혜성처럼 나타난 케이온은 방영 초반부터 많은 호응을 불러모았죠. 왜냐하면 Lianggong이나 러키☆스타 같은 이색적인 작품을 통해 이름을 날린 쿄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고, 여고생+기악(밴드)라는 기막힌 조합에 많은 이들을 흥분시킬 만한 주제를 뼈대로 하고 있기도 했으니까요. 전체적으로도 꽤 괜찮은 작품 소리를 들을 만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만큼의 호응을 끌어내지는 못한 것이 꽤 아쉽기도 했습니다(저도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졌죠).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을 사이로 양다리로 걸쳐 놓을 다른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죠. 바로 러키☆스타와 뱀부 블레이드입니다. 러키☆스타야 동사(同社)작품이니까 여기 말고도 수많은 곳에서 우려먹히고 까였을 테니 설명을 줄이겠습니다(엔하위키에서 ‘케이온’만 쳐 봐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문제는 뱀부 블레이드와도 상당부분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럼 이 세 작품의 관계를 까발려 볼까요?
일상 잡담과 소일거리 | 목표 지향적
폐쇄적 | 개방적
평면적 | 입체적
전개가 빠름 | 전개가 느림
—
럭스 | 케이온과 뱀블
구심점이 부재 | 구심점이 존재(부활동)
시청자와의 거리가 가까움 | 시청자와의 거리가 멈
4인 구도 유지 | 4인 구도에 +α로 새로운 국면
집약적 | 조방적
교사의 비중이 작음 | 교사의 비중이 큼
—
케이온 | 럭스와 뱀블
2009년산 | 2007년산
주요 인물에게만 주목 | 주변 인물의 비중 有
일시십반적 구조 | 십시일반적 구조
작품 내 오타쿠 코드 부재 | 존재
일단 위의 표로 1차적인 설명은 끝났다고 봅니다. 그럼 케이온과 뱀블을 통해 더 깊이 설명을 해 보죠.
케이온과 뱀블 모두 ‘동아리 활동’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동아리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고문의 존재감이 꽤 강하다는 특징이 있죠(두 고문 모두 과거보다 해당 활동에 소극적이라는 것도 똑같습니다). 두 작품의 인물 구도가 처음에는 4인이었다가, 중후반부에 1인이 난입한다는 것과 동아리 활동의 내용이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분야(기악과 검도)라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뱀부 블레이드와 케이온을 갈라놓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동아리 활동 내용과 그로 인해 생기는 인물관계죠. 전자는 별 말이 필요 없고, 후자가 중요합니다. 뱀블은 처음부터 선후임 관계가 성립되고 다른 검도부원과 대결, 합숙을 하거나 유령부원의 비행으로 동아리의 존립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생기는 등 상당히 입체적이고 개방적인 인간 관계가 드러나는데, 케이온은 선후임이 없고(아즈사가 다른 인물들의 후임으로 들어오지만 혼자이고, 유이 등 4인방에게 선임이 존재하지 않으니 선후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동아리나 인물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 자기네들끼리만 노는 폐쇄적인 구도가 이루어지고 있죠. 줄여서 뱀블은 과수원, 케이온은 온실 꽃농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다 보니 두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뱀블은 입체적 인간관계 특성상 다른 동아리와 같이 부대끼면서 일종의 ‘대결 구도’를 만들게 되죠. 그렇다 보니 ‘수련’과 ‘전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따라서 시간적 흐름도 느려지게 됩니다(2쿨에 1년이 겨우 지나갑니다). 반면 케이온은 선후임 관계가 발생하지 않아 등장 인물들이 더 쉽게 친해지게 되고, 뱀블과 같은 대결 구도도 존재하지 않다 보니 ‘무도관 입성’이라는 목표는 묘향산으로 보내 버리고 ‘구성원들끼리의 잡담’의 비중이 커지는 양상을 띠고 있죠. 그래서 해당 인물들에게’만’ 집중하게 되고, 별다른 이야기도 없다 보니 전개도 매우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1쿨에 2년이나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이 케이온에 있어서는 양날의 칼이 된 거죠.
실제로 이 밴드부를 구실로, 친목질을 내용으로 한 케이온은 일단 어느 정도 선의 팬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된장녀스러운(…)물건도 나름대로의 볼거리였고요(그걸 찾아내는 사람도 흥미로웠죠), 그러면서 일단 ‘구실’인 밴드 활동을 그려내는 데도 탁월해서 서툴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해 나가는 사쿠라고 경음부의 모습도 정겹게 다가올 수 있었고요.
하지만 케이온은 그 방향성을 확실하게 잡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기본적인 뼈대는 분명 ‘음악 만화’인데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개성 있는 캐릭터, 갖가지 이채로운 물품과 같은 부수적인 소재가 너무 강해서 ‘음악을 하는’ 케이온의 진정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것이 이 작품의 한계였던 거죠. 연습 신은 모두 “시작~끝!”하는 식으로 생략이 많았고, 실제 공연 신도 기대만큼 많지 않았던 만큼 방영 초반의 박력을 많이 잃었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이 작품이 조루라고 예측하기까지 했습니다. 1쿨로 끊는 단기 애니메이션의 한계도 있고, 원작의 연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이런 문제에 한 몫씩 하긴 합니다. 실제로 생각만큼 많은 이야기가 다루어지지도 못했고요, 결정적으로 악기를 그리지 못하는 동인 작가가 많다고 하죠.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조루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해당 작품은 러키☆스타 이후 쿄토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방향을 잡기 위한 ‘시운전’의 성격이 강했고, 그런 뒷배경을 생각한다면 생각보다 크게 선전한 작품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더욱이 해당 작품의 주인공 성우들은 대부분이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신인들이고요(저와 동갑내기들입니다). 또 급조된 것이긴 하지만 주인공 유이에게 닥쳐온 위기와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도 분명 나와 있고(후반부), 그런 점에서 케이온을 보면 단순한 조루를 넘어 빨리 피고 빨리 지는 대나무꽃이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겠습니다.
어찌되었건 이것은 뱀부 블레이드와 비교했을 때(이 놈도 잘난 건 없지만)한계도 많이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물건입니다. 예상치 못한 큰손(츠무기)의 존재와 엄친딸급으로 실력이 오르는 등장 인물들의 기량은 작품의 현실성을 떨어뜨렸고, 동아리의 활약상을 잘 보여 주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뱀부 블레이드처럼 막강 파워와 함께 실력이 잘 늘지 않아 고민하는 인물이 섞여 있었으면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고, 동시에 뱀부 블레이드와는 다른 강한 목표를 잡아 등장인물의 성장을 그렸으면 애니메이션 케이온만의 색다른 맛이 더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듭니다(제목이 ‘경(輕)음’인 만큼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맛으로 확실히 밀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고요. 하지만 현실의 케이온은 조금 갈팡질팡했던 것 같습니다).
뭐, 쿄애니가 원래 ‘군소 만화를 네임드로 만드는 마법’을 잘 구사하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 케이온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숨은 만화를 발굴해 더 아름답게 깎아낼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쿄애니의 실험은 그런대로 성공입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풀칠을 더 한다면, 케이온과 함께 럭스나 뱀블을 곁들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중학생 이상 직장인 미만이시라면, ‘동아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럭스와 뱀블을 같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케이온의 경음부가 이상적인 동아리라면 뱀블의 무로에고 검도부는 더 현실적인 동아리라는 점도 상기해 두고 말이죠. 그리고 몇몇 내용은 Hineo님의 케이온 포스트에서 새로 안 내용을 토대로 쓰여졌습니다. 핑백과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막짤로 우리가 일본 철도에서 배워야 할 단량(單輛) 열차를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영산백이었습니다. 다음엔 뭘 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