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동아리에서 홈커밍 데이를 진행한다기에 써 본 단편 습작입니다.
내용은 많은 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어디서 많이 본 소재를 자근자근 다져넣었으며 작정하고 맛이 간 센스(…)로 쓴 글이라 보시다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책임은 못 집니다. 그래도 연습 삼아,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썼으니 도전하는 당신이 아름다운 거 아니겠어요?(…)뭐, 여기까진 자기 합리화고, 모티브는 제가 백령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일거)입니다. 2년의 군생활 중 전반 1년 동안 저한테 있어 가장 영향력이 컸고, 충격도 컸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쁜 새끼(…)였던 선임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의 말년 때의 행적을 토대로 휘갈겼죠. 뭐 따지고 보면 엄청난 자위물이지만서도요.
그럼 마음 편하게 재미있게 감상하길 바라며 설명은 줄일게요~
※이 글은 시드노벨 자유연재란에서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잘도 이런 미친 글을
힘세고 강한 여름! 누구라고 물어보면, 나는 일경 정수묵. 은 농담이고, 인천 연안부두 해경 부두에서 군생활 하는 전경이라고 합니다. 뜬금없이 왠 군바리냐고요? 아뇨, 다른 게 아니라요, 제 지금까지 군생활 열두 달 동안 난생 처음 겪은 멋진 사건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어어…페이지 접으시게요? 봐 줘요, 그런 의미에서 수묵이 애교♡
…
죄송해요, 손발이 오그라드셨죠? 이상한 짓은 그만 하고, 메인으로 들어갈까요~?
저는 전경 중에서도 해경 전경인지라, 배를 타고 있어요. 막내는 처음에 밥 짓고 국 끓이지요. 그러다 뱃일을 하죠. 전 짬 차다 발령나서 갑판이라는 직별을 받았죠. 갑판이 뭐냐고요? 그냥 잡일꾼이에요. 그것도 메인은 뺑끼죠. 아, 사이드 까는 게 아니라, 페인트요, 페인트. 저희 배 함장님이 쿠마○치 뺨치는 신사분이셔서 배를 이타샤처럼 이곳 저곳 꾸미기를 워낙 좋아하시거든요. 덕분에 죽어나는 건 저희 갑판이죠. 이 중엔 여기가 첫 근무라는 신임 여경도 있는데 말이에요. 너무했죠? 거기다 이 여경분이 끝내 주는 백치미 덜렁이라서요, 툭하면 이리 다치고 저리 치여 고생이 많으셔요. 뭐 짐 같은 거 나를 때도 꼴랑거리는 배를 못 견디고 이리 쏟고 저리 쏟고, 뒤처리를 저희 전경이 다 하죠. 페인트 바를 때는 페인트 통을 모르고 넘어트리시고는 다소곳이 주저앉아 훌쩍거리시지 뭐에요? 원, 참. 페인트 범벅을 언제 다 담으라고. 전경이었으면 고문관이라고 두고두고 놀림당했겠죠? 에효. 그래도 생긴 게 가련해가지고는, 보호본능 생겨서 미치겠어요. 목소리도 콧소리 섞여 앵앵거리는 게 어찌나 귀여우신지……. 사람은 이쁜데 행실이 맹해서 문제지만요.
이렇게 하루 과업이 끝나면, 그 다음은 내무 생활이겠죠? 저희 전경들 지도관님은 전경 특채로 들어온 젊은 순경이신데, 에휴, 이 사람은 어찌나 비속어가 입에 잘 감기는지, 첫 인사가 욕으로 시작해요. 예시요? 에이, 여기 쓰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안 쓸래요. 그냥 전주 욕쟁이 할머니 식당보다 입에 착착 감겨요. 저보다 굳세고 강한 나날을 위해 밥때에도 닭가슴살만 드시고, 시간 날 때마다 웨이트도 안 빼 놓으세요. 어떻게 생겼냐고요? 빌리 형을 보는 것 같아요. 누가 가면 「우홋! 멋진 남자….」라고 할 정도일까요? 여튼 굉장히 힘세고 강한 분이죠. 말고도 여기 적기에는 너무도 많은 직원이랑 전경들이랑 모두 함께 떠들썩하고 박진감 넘치는 군생활을 하고 있네요.
근데 하루는, 제가 아침 9시 부두 당직에 편성된지라 아침부터 바삐 당직실에 달려든 적이 있었죠. 거기 전경 고참 둘이서 뭔가 심각한 투로 대화를 나누더군요? 근데요, 어머, 어머머. 들어 보니 장난이 아니데요? 지금 들어보니 잔교의 악명 높은 말참이랑 소문 안 좋은 후임놈 이야기네요. 저도 자연스럽게 채팅창을 켰죠?
“아, 짜증나. 우리 내무반장인데, 어떻게 저런 놈이 왔는지 모르겠어.”
“아니, 어떻게 끗발을 부리길래 그런데?”
“처음엔 나랑 같이 전입을 오기도 했고, 짬 없을 때 고생을 많이 해서 무척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 근데…. 지내보니 완전 자기 환상향이야.”
“뭐 어떻게 환상향인데?”
“아니 무슨, 자기 옛날 배가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환상향인줄 알아. 언젠 한 번 외출 갔다 와서 라크로스였나? 여튼 그런 거 라켓이랑 공을 싸들고 온 거야. 그리고는 그 배에서는 휴일마다 운동을 한다는 거야. 그리고 억지로 라크로스를 시켜!”
참 억지 춘향이죠? 내가 좋아한다고 남이 좋아한댔나요. 더군다나 라크로스라? 할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텐데….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 놀고 싶었나? 혹시나 하는 김에 눈에 들어오는 건 전용부두 총원명부로군요. 근데 그 놈 이야기하는 사람 배 명단에 쓰여 있는 문구가 참 가관이어요.
「인천해경 “공식” 라크로스 클럽」
누가 공식 클럽 해달랬나요?
“아니 그것보다도…. 우리 배에서 수경부터 일경까지 진급자가 하나씩 다 있었는데….”
이거야 원, 또 불안하군요.
“진급식을 한다고 무슨 탑나시 원피스랑 하이힐, 스타킹을 갖고 와서는….”
동기가 놀라는 모양입니다. 가을도 아닌데 얼굴이 단풍잎처럼 붉어지네요?
“무슨 그런 복장을 진급자에게 입히고 토끼귀를 씌워놓고는 자기 진급할 때 이렇게 입히고 놀렸다는 거야! 참 나, 어이가 없어가지고….”
어머머머머. 이건 무슨 시크 뭐시기의 마법도 아니고. 스즈미야 거시기 애들 해꼬지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함장님을 날아넝는 대단한 신사 종결자 나셨다, 그죠?
“김청순 그 새끼는 뭐 지 짬찌 시절 생각은 안 하고 저러냐.”
…어? 뭐라고? 김청순? 김청순이라면…. 나 밥 하던 시절에 자기가 내 멘토해 주겠다고 하던 놈인데…. 막내 때 구타사고 때만 해도 날 이해해 주는 척하더니, 맞선임이 발령나고 사라지니까 본성을 드러냈었지…. 나중에 우리 배 수리가서 선임들이랑 놀려고 할 때는 갑자기 얼차려시키고…. 친해지지 못하게 쬐그만 것도 부풀려서 선임들 이미지 흐리게 조장하고…. 그리고 쉴 때 못 쉬게 이상한 일 억지로 시키고 안 했다고 끌고 가서 존나 때렸지…. 근데 때릴 때 어땠더라…? 말할 때는 존나 참더니 때리는 순간에는 입꼬리가 올라갔었지? 무슨 비단 찢을 때 입꼬리 올라가는 서시도 아니고…. 그 놈 때릴 때 히죽거리는 모습…. 아, 슈벨, 끔찍해. 죽음의 공책에 나오는 야가미 라…이름 뭐더라 여튼 그 신세계의 신 썩소를 보는 듯한 그 표정. 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키워서 잡아먹는 놈이었지. 일 못하는 취사 막내 끌어들여서 좋은 사람처럼 접근했다가 나중에 지 학대욕구 채울 때 써먹으려고….
아, 흥분해서 죄송해요. 사실 저 김청순이란 놈, 악질입니다. 막내 때 사고치고 무릎 다친 다음에 그걸로 한 달 만에 출장소로 튀어버린 전적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잔교로 돌아올 때는 선임 대접도 못 받고. 심지어는 다른 배로 끌려가서 집단구타 당했다는 씁쓸한 뒷소문도 있죠. 걔 동기들도 그 놈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지금 있는 배에도 내무반장을 할 때까지 발릴 정도로 행실이 안 좋은 놈인데…그런 놈이 호랑이 없으면 여우가 왕이라고 자기 소속 배를 자기 환상향으로 바꾸려고 드는 거죠. 놀고 자빠졌네. 니가 Z선생님이냐. 환상향 만들게. 이렇게 걸쭉한 뒷담화 엿가락이 늘어지다가 엑기스가 하나 나옵디다.
“아, 근데 너희 배 권우라는 녀석 김청순한테 말려들었다던데.”
그러자 그 배의 선임이 안타까워하며 맞장구를 치는군요.
“맞아…! 권우 걔, 행동도 빠릿하지 못하고, 어리바리하기도 하고…. 그래서 김청순한테 말려들고 있어.”
이야기를 들어 보니 김청순이가 나한테 했던 만행을 권우라는 친구한테 되풀이하는 모양이어요. 하긴, 처음에 총원명부에는 김청순이 글씨로 옆에 ‘관운장님!’이라는 깨-음찍한 별명이 쓰여 있던데 말이죠. 지금 보아하니 이 친구 밑에 한 명 밖에 없군요. 아직 취사네요? 그럼 오장? 그러고 보면 김청순이가 흉폭해진 건 제가 막내 탈출하고 나서였죠.
“언제 한 번은, 자기 막내 때 선임들은 크리스마스 백화점 쇼핑을 가는데 자기는 냉장고 쇼핑을 했다고 그걸 권우랑 막내한테 시키고, 말릴 순 없고 그렇다고 냉장고가 그렇게 더러웠던 것도 아니고….”
쇼핑이 무슨 소리냐고요? 물건 사러 가는 쇼핑도 있는데, 배 타는 놈들은 비누로 물건을 속까지 깨끗하게 그러내고 닦는 일을 쇼핑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영어단어 비누에 Ing를 붙여서 발음하니 우리가 말하는 쇼핑이랑 발음이 비슷한데…여하튼 그런 건 제가 용납 못 해요. 저도 그런 일 당했는걸요? 이 작자는 어디 소설 마이크 마이크도 안 읽었는지, 자기가 무슨 신사적인 취향이 있는지도 깨닫질 못하나 봐요. 그 누구냐? 거기 나오는 이 뭐시기랑 자기랑 동일시하는지는 몰라도 말이죠. 그 여자애는 긔엽긔라도 하지. 김청순이는 거꾸로 해도 긔엽긔가 될 수 없어요. 뭐 그렇다고요. 저는 이걸로 선임분들이랑 같이 호박씨를 긁다 시간을 보냈죠.
“여튼 너도 고생 많았다. 그 색희 밑에서.”
“에이, 아님다. 그래도 그 땐 그랬으니 이젠 더 밝겠지 말임다.”
그렇게 또 당직 시간이 가네요. 하지만 당직실 창문에 붙어 있는 당직 편성표에는 김청순이가 갈긴 인계사항이 적힌 포스트 잇이 덕지덕지. 이런 게 바로 훌륭한 안구테러 종결자이어요. 그래도 편성표 밑에 성경 구절이 적혀 있네요. 안구정화물일까요? 전 기독교는 아니지만요, 그래도 좋은 글귀를 잘 골랐네요. 기독교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이것도 안구테러라 하겠지만요, 어떡해요? 종교인데, 취향인데, 존중해 줘야죠?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파트가 고전 어딘가라는데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어요. 죄송해요~.
또 며칠이 더 지났네요.
이번엔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새벽당직이어요. 하루 일과 기준이 아침 9시인지라 뒷일이 많아서 피곤하죠. 그래도 오늘은 우리 배는 휴무니까 상관 없어요. 들어가서 자면 되어요?
아침에 전보 타가는 각 배 막내들이 왔다갔다 하기 전엔 엄청 따분해요. 뭐 할 거리 안 가지고 오면 그냥 창문 너머나 보고 멍때리는 것이어요. 그래서 이번 당직도 창문을 보죠. 그리고 오늘 창문에 걸린 것도 역시 당직 편성표여요. 당직 시간의 마지막에 쓰여 있는 내 관등성명이 있어요. 일경 정수묵. 그리고 그 밑에 있던 그 멋진 성경 구절…이 요기엄네? 이게 뭐여요? 누가 성경 있던 자리에 흰 종이를 덮어 붙였네요. 이것 무슨 멍텅구리. 그래도 멋진 구절이었는데. 아쉬워요. 어, 근데 붙인 종이에 뭐라고 써 놨어요. 뭐여요?
「이것 떼는 대원은 주님의 이름으로 내가 심판할 것임.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지, 십자군이 아님. -2☆○함 빤장-」
필체에 데자부를 느낀 저는 마지막에 어디 빤장인지 빤쓰인지 나오는 구절을 보니 소름이 ㅁㄴㅇㅛㅈㅗ…죄송, 손발이 오그라드는 바람에 오타가 났네요? 이해해 줘요, 그런 의미에서 수묵이 애교♡
…는 농이고, 이 글귀 여러 모로 용서 못허요. 무슨 주님의 이름을 늬가 빌렸니? 주님의 이름을 빌리면 십자군인데 우린 십자군이 아닌데…넌 십자군이라네? 십자군은 군인이 아닌가, 무슨 뭐 ‘비기독교인의 정서와 맞지 않음’이라면 모를까 무슨 우리가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고 심판하는 건 또 뭐여요? 이 구절보다 금강산 비취동 신선 머리털이 가까운 것 같어요.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김청순 씨. 참 허탈해서 웃음이 나오는데 어디서 취사 전경이 달려오네요.
“충! 성!”
표정이 잔뜩 굳었어요.
“오늘 점호 있는지와 수신철 받고자 들어왔슴다!!”
“어느 배야?”
“2☆○함임다!”
어머, 그럼 얘는?
“그럼 누구냐, 넌?”
“이경 최권우입니다!”
오호…김청순이 자본주의의 돼지가 바로 얘였구나.
“너희 배 내무반장님이 김청순 수경이야?”
“예, 그렇슴다!”
대답할 때마다 열중쉬엇과 차렷을 왔다갔다 하는 권우가 안쓰러워요. 어, 근데 순찰 도시는 직원분이 들이닥치어요?
“의~슈벨홈이 뭐하노? 기합주노? 에~라이.”
상큼한 비속어로 인사를 시작하는 우리의 이기상 순경님이어요. 잔교 순찰 시간인가 보아요?
“이상 읎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순경님 눈에 띄는 김청순이의 글귀.
“아이고…이 뭐꼬? 새끼들…누가 썼노?”
어라, 이거 재미있겠어요. 이 참에 김청순이 이야기를 꺼내보면 괜찮겠어요.
“참, 나 루갈한다. 직원은 대원 아이가? 아이고~. 그럼 내가 이거 띠면 이 전경은 나 처단하겠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순경님이 권우를 쳐다보아요.
“어이! 넌 누구냐?”
“이경 최권우입니다!”
잠시 생각을 하시는 중이어요?
“늬가 그 괴롭힘당한다는 가가?”
권우가 이 순경님 말씀도 끝나기 전에 외쳐요.
“주의하겠슴다!”
아니, 이건 잘못한 게 아닌데 말이어요?
“야, 내가 도와줄게! 너 여기 점심에도 들르지?”
“예, 그렇슴다!”
“나중에 이거 선임들 보는 앞에서 떼부러!”
잠시 대답을 잇지 못하는 가 보아요.
“이 시퀴! 대답 안 하노?”
“예, 알겠슴다!”
취사 한 지 몇 달 지났는데 고정 대사뿐이어요. 많이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눈 딱 한 번만 감고, 그거 띠부러라. 내가 도와줄 테니까, 여차하면 내 이름 팔아라. 알겠지?”
또 며칠이 지났어요. 이번엔 낮당직이어요. 오후 일과는 당직으로 땡이어요. 야 신난다~가 아니라 당직 상번이 김청순이어요. 지옥이어요. 같은 배였다고 친한 척하는 김청순이 저는 싫어요. 누가 얘 좀 데려가 줘요.
“요새 거기 가서도 일 빵꾸내는 게 있대며? 좀 잘 해라.”
무슨 의도인진 모르겠는데 저한테는 디스로밖에 안 들려요. 치타맨 빅릭스를 제값 내고 플레이하는 사람의 감정이 이입되고 있네요. 사회 같았으면 쿨하게 씹었어요. 아, 근데 취사 친구들이 리어카를 끌고 소각장으로 올라가네요? 그럼 오늘 권우도 나오겠어요. 양반은 못 되겠어요. 말하다 보니 권우가 현문에서 등장했어요. 그럼 여길 지날텐데요. 어? 오다 말고 갑자기 우리 배 함수를 향해 뭘 듣나 보아요. 어, 갑자기 알겠다네요? 알긴 뭘 알길래 그럴까요. 우리 배 함수는 오늘 뺑끼친다고 갑판 전원이 몰려 있을텐데요. 이기상 순경도 앞에 있을 거고….
“충, 성! 수고하십니다!”
아우, 깜짝이어요! 멍때리다 여기 들어왔네요.
“콜박스 쓰레기통 비워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돌아가면 오죽 좋겠어요. 애가 갑자기 김청순이를 보더니 얼었나 보아요.
“야, 뭐 하냐? 빨리 안 하냐-.”
김청순이가 목소리를 내리깔았어요. 듣기 께름칙한 소리어요…어? 아니, 갑자기 당직 편성표의 쪽지를 떼어요???!!?!?!
“…(!+?=!?)”
김청순 눈이 갑자기 커지더니 얼굴이 노래방 터닝 볼처럼 붉으락푸르락이 되어요. 그리고 자리를 박차더니 권우를 패기 시작하는 거여요.
“야, 이 신발석아.”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대사 나올 때는 참더니 때릴 때는 참지 못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맥도날드 냉동실에 들어온 느낌이어요!
“이거 뜯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듣지?”
그리고 권우는 우짖어요.
“이병 최권우! 이병 최권우! 이병 최…!”
반응이 느리다고 또 때리는 거 보아요.
“관등 안 나오냐?”
정색, 썩소, 정색, 썩소, 정색, 썩소, 정색, 썩소…안 되겄어요, 전 여길 나가야겄어요. 당직을 정지하여요. 정지하여요…앙 대자나?
“수묵이 넌 이 색희 관리 안 하지? 넌 취사 관리할 짬 아냐?”
저까지 당직실 밖으로 끌고 나가서 때리네요? 이 무슨 디엠시어요? 저는 자본주의의 돼지가 아니어요.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보통 군인이어요. 누가 나 좀 꺼내 줘요. 이 플레이 좀 누가 정지해 주어요. 전 여기서 나가야겄어요? 이건 들어올 때는 맘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닌가 보아요?
“야, 그만!”
우리 배 저만치서 들리는 소리어요?
“놀이는 여기까지다!”
아니, 우리 배 전경지도관 이기상 순경님 아니어요?
김청순이도 흠칫 놀랐나 보아요.
“뭐냐, 넌!?”
이 순경님이 똥폼을 잡고 말을 이어나가요.
“느그 후임들을 그렇게 괴롭힌다는 김청순이가? 넌 죽었다. 진리와 자유,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널 처단해 주겠다!”
어, 그리고 이 순경님 손에서 무슨 보석을 꺼내어요? 무슨 보석방에서 산 거이어요?
“매직-플래시!!”
어, 그리고는 이 순경님이 함수 갑판에서 뛰어오르시는 거여요. 오오, 지금은 해가 궁둥이 위로 솟은 대낮인데, 보이는 건 오색 찬란한 오로라이어요? 어, 근데 이 순경님이 안 보여요. 아, 얼굴이 하나 보이네요. 근데 몸이 반짝반짝 빛나네요? 이 순경님은 빙상 위의 김연아를 보는 듯 찬란하게 돌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 가는 건가 보아요.
(#nowplaying 케로메로스의 축복과 페이스의 은총~악보는 없어요. 마음의 귀로 들어요.)
우여 놀랍다. 이 순경님은 이제부터 머리에 롤빵을 단 듯 꼬아놓은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팔꿈치 위로 올라가는 장갑에 프릴이 풍성하고 장딴지까지만 겨우 가리는 아찔한 치마, 그리고 무릎을 한참 올라가다 치마에 닿지 않는 아쉬운 양말, 사춘기 소녀가 신을 만한 둥근 구두를 갖춘 어여쁜 마법소녀이어요. 오오, 왕관이 달린 귀여운 지팡이도 쥐고 계시네요?
“뭐, 뭐냐…!?”
김청순이는 지금 벙찐 표정이어요. 마치 콜라에 아이스크림 조각을 처음 넣어 본 사람 같어요. 그 사이에 이 순경님은 벌써 잔교에 발을 붙이고 김청순이를 노려보고 있어요.
“자, 간다!”
그리고 이 순경님은 숀 크로포드의 그것과 같은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잡더니, 치마 한쪽을 들추면서 왕관 지팡이를 후두둑 털어내요.
“늬들은 저리 피해라!”
저랑 권우는 올라갔죠. 지금 잔교 위 언덕이어요.
그리고 펜싱 검객처럼 김청순이를 향해 지팡이를 하나씩 내지르네요. 김청순이하고는 꽤 거리가 먼데요? 어, 근데 지금 내지르니 왕관이 지팡이를 떠나 훨씬 앞쪽으로 날아가네요? 김청순이도 꽤 날렵한데요? 모로 뛰고 세로 뛰고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구르고 장난이 없어요.
“이게 뭐야!”
그런데 이를 어째요…이 순경님 날린 왕관이 다 안 맞네요. 이제 남은 지팡이도 몇 자루 없어 보여요. 어라? 하나가 김청순이한테 명중했어요. 나이스 샷! 어디를 맞았나요? 어머머, 발레리NO가 민망해하는 위치를 맞았나 봐요. 김청순이는 이제 심영 선생님하고 인연이어요. 그렇게 한참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나 보아요.
“으으…이젠 용서할 수 없다. 양천! 탱천발일광!”
청수니와쪄요 뿌우. 를 하더니 김청순이는 사라지고 갑자기 전차가 되었네요. 오호…양 귀퉁이엔 곡갈콘보다 뾰족한 가시에 코엔 코끼리 코처럼 긴 포신이 달렸으며, 바퀴는 지네 발처럼 주렁주렁 달린 흉측한 전차이어요. 몇 년 전에 인천 관광을 전차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저게 저런 전차였나봐요.
“으아니…챠?”
그리고 무섭게 돌진해 와요. 어머, 이 순경님 소환하실 지팡이도 모자라는 모양이어요. 그래서 왕관 뽑은 지팡이라도 빌려서 막 던지고 계시네요? 아, 근데 전차가 너무 사나워요.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벌써 이 순경님은 헐떡거리시고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하고…누가 좀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어요.
“이 순경님, 흐에엥~이 순경님! 어디 계세요? 이 순경….”
아니, 이 분은? 우리의 덜렁여경 정온누리 순경님 아니시어요?
“아앗!”
어라? 정 순경님이 아까 전에 열었던 해치문 속으로 다시 사라지시네요? 이 무슨….
“흥, 너희는 이제 모두 죽은 목숨이다!”
그리고 전차의 엔진이 들어가더니 무서운 속도로 이 순경님에게 달려들어요.
“끼요오오옷! 끼야우웃!”
그리고 전차가 외칩니다.
“이야아압! 나의 따따블 피어싱을 받아라!”
이 순경님은 따따블 피어싱을 맞으시고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다행히 바다로 빠지지는 않으셨어요. 어떻게 해요. 심하게 다치신 것 같은데. 잔교 끄트머리에서 넘어진 채 일어나시질 못하는 것 같아요.
“자, 너희들도 이제 끝이다! 아하하하핫!”
바로 그 때, 우리 배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공중제비를 돌며 저희 앞으로 날아오네요.
“너는 여기까지다!”
저희를 뒤로 하고 김청준을 내려다 보며 외치네요.
“지금까지는 네 맘대로였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어라? 이 사람은 전신이 달라붙는 옷에 갑주, 그리고 챔피언 벨트와 소소한 무기를 몸 곳곳에 붙이고 있네요? 얼굴은 사마귀 가면 같은 걸 쓰고 있어서 안 보이는데…이상하네,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 아니어요? 뭐 설마 정 순경님은 아니겄지요?
“누구냐, 넌!”
김청순이 조금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군요.
“나는 사랑과 용서의 이름으로 태어난 마법 라이더. 어린 친구들을 괴롭히는 녀석들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김청순이는 가소롭다는 듯이 매서운 엔진소리와 함께 전속력으로 달려와요. 하나 이건 그 다음에 정 순경님…이 아니라 마법 라이더의 입에서 한 말이어요.
“속박의 바람.”
그리고는 손을 김청순이를 향해 뻗치는군요. 오오, 라이더의 손에서 광풍이 나오더니 김청순이 전차의 바퀴를 휘감고 움직이질 못하게 해요.
“응? 뭐야, 왜 안 나가!”
다음은 바퀴가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김청순이 전차를 향해 날아오는 무기들이어요. 수리검, 화염구, 마법의 화살…. 김청순이 전차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어요.
“자, 이제 끝이다!”
라이더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면서 자기 몸뚱이 아홉 개는 들어갈 만한 머스킷을 불러왔어요. 그리고 머스킷 총머리는 김청순이를 향해 섰어요.
“티로….”
총구멍에는 빛나고 커져가는 태양이어요. 태양에는 김청순이한테 핍박받고 숨죽여 왔던 그 모든 이들, 그리고 그 미래를 맞이할 모든 후임들의 꿈이 한 가득이어요.
“피날레!!”
그리고 오색 찬란한 총파가 김청순이의 미래를 향해 날아가요. 총파 속에는 우리의 꿈과 희망, 설움이 한 가득이어요. 그렇게 김청순이는 티로 피날레를 맞고 반짝거리는 총파와 혼연일체가 되었어요. 움직이지도 않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 가시광선만을 내뿜고 있어요. 그런 김청순이 전차 앞에는 어느새 마법 라이더이어요.
“필․살….”
그리고 마법 라이더는 어디서 가져온 지도 모를 길고 아름다운 검을 양손에 쥐고 날을 들고 외치죠.
“갱․생․일․참!!”
김청순이 전차가 거울에 비친 듯 말끔하게 잘리더니 이내 산산조각으로 폭발이어요. 화염이 잦아들고 연기가 나자 숯검댕과 물아일체가 된 김청순이가 드러누운 채 기침을 하고 있어요. 감격에 겨운 저와 권우는 잔교로 달려내려갔죠. 아아니, 주변에는 마치 해경의 날 사열나온 것처럼 잔교의 모든 직원, 전경들이 포화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네요. 그리고 다음은 어디서 시작한지 모를 환호와 박수여요. 저는 흥에 취해 라이더에게 외쳤죠.
“수고하셨슴다, 정 순경님!”
그러더니 갑자기 놀라는 목소리와 함께 당황하는 라이더이어요.
“응? 아니다! 정 순경 따위가 누구지? 난 모른다. 나는 시대를 가르는 마법 라이더일 뿐.”
어쩐지 아직도 덜렁여경님이랑 헷갈리는 건 저 뿐이어요?
“나를 너무 많이 알려고 들지 마라. 너 자신이…위험할거야.”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라이더가 말했죠.
“그럼, 뒤를 부탁한다! 멋진 승부 남기고 간다!”
그리고 급히 달려가더니 바다로 다이빙을 하고는, 사라지는군요. 모두가 웅성거리며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어요. 대체 누구였을까요, 마법 라이더는? 아, 근데 뜬금없이 우리 배 갑판에서 양 팔을 접고 한 쪽씩 파닥거리며 달려나오는 저 사람은 우리의 덜령여경 정온누리 순경님이어요? 안경도 기울어져서 안쓰럽네요.
“이 순경님? 이 순경님!! 흐에엥….”
우리는 그 동안 잔교 끝에서 안습이 된 한 명을 신경쓰지 않고 있었어요.
또 며칠이 지났어요.
이제는 다시 일상 과업이어요. 이 순경님은 여전히 말투가 거친, 그렇지만 마음씨 좋은 전경지도관이고요, 정 순경님은 또 불안하게 나다니다 이곳 저곳을 넘어지는 백치미 덜령여경이어요. 저도 이제 며칠 뒤면 상경이고요, 또 떠들썩한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요. 이제 그 누구도 잔교에서 횡포를 부리지 않아요. 김청순이는 이제 권력의 열매에 탐닉하다가 스러진 이로 회자되고 있어요. 오죽하면 ‘김청순보다 멍청한 녀석’이 잔교 최대의 핀잔이 되었을까요? 어찌되었건 저는 믿어요. 비록 마법 라이더와 마법소녀는 지금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잔교의 전경이 모두 전역하고 사회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영원히.
(근데………………마법 라이더는 진짜 정온누리 순경 아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