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서해 중부 해상은 남한이 건드릴 수 있는 서해안 최북단 지역으로 수도권 배후해역이기도 해서 국가 전략상 매우 중요하죠. 동시에 중국과 북한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대대륙 무역이나 안보 측면에서도 놓칠 수 없고요. 유사시에는 서해 5도라는 국가 1차 저지선의 보급로로도 쓰이죠.
아쉬운 것은 지난날의 서울도 노들나루, 삼전도 등을 통해 서해와의 수운 연결이 이루어졌지만, 한국전쟁 휴전 이후 서울 수로의 출구인 한강 하구에 휴전선이 놓이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항로를 봉쇄당했죠. 따라서 전후 서울의 수상 물류는 전적으로 인천에 의존해야만 했고, 동시에 도시계획이 도시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난개발과 함께 서울과 인천 간 육상물류는 막장으로 치달았죠. 따라서 현 정부 들어 경인 아라뱃길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한강 하구를 열기는 틀렸으니까 서울의 수운 재연결로 동아시아 물류와 무역 주도권을 노리고자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서울의 1·2차 산업 기반은 많이 쇠했기 때문에 수운 수요의 근거가 심히 빈약하긴 하지만….
한편 수운은 물때와 해류, 기상 등의 문제를 넘는다면 항구와 배만 확보하면 공사 끝이라는 특성 때문에 투자 비용이 상당히 적은 운송 방법이기도 합니다. 속력을 내기 어렵고 육지의 지형에 따라 항로가 드립을 칠 수 있다는 위험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종전에 저는 인천-백령 페리를 보고 이런 포스트도 쓴 적이 있죠? 그럼 인천-백령 페리와 인천-연평 페리의 모습을 보고 윗동네의 도시 배치도 한 번 살펴 봅시다.
노란 선은 지금의 서해 5도 항로이고, 주황색 점선은 UN측 지정 NLL입니다. 북한 측에서 표시된 도시는 북한의 H자 간선 교통망상에 있는 도시들이고요. H자에서 신의주-평양, 평양-개성으로 이어지죠. 해주의 경우는 평양-개성 간 주요 교통망과는 떨어져 있지만 평양-개성 교통망의 별도 루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서울-대전 교통망에서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따로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북한의 육상 교통망은 도로와 철도 모두 괴악한 수준의 관리 상태를 보이고 있어 원활한 활용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몇 년 전에 서울-부산 간 거리와 비슷한 평양-청진간 거리가 철도로 1주일 걸린다는 데서 말 다 했죠. 남한에서 도시철도를 굴리는 구간인 서울-천안 사이가 하루 걸리는 꼴입니다.
따라서 통일 이후에는 한동안 육상 교통망을 정비해야 할 겁니다. 통일 이후 북한의 역할은 대륙과 수도의 연결인데, 북한 내부의 자체 교통망 수준이 저래서야 대륙과 수도 연결은 택도 없죠. 차라리 한중 페리가 나을 지경입니다. 더군다나 산해관 이남 중국 재래지역은 어차피 드리프트니까요.
마침 서해 5도 항로는 북한측의 신의주-평양 교통로, 평양-개성 교통로와 비슷한 노선을 따라갑니다. 백령도 북방을 자세히 보시면 평안도의 주요 도시들과도 꽤 가깝죠? 연평도 같은 경우는 해방 전까지 아예 해주의 섬 멀티 취급이었으니까요. 이런 시각에서 서해 5도 항로를 각각 북진시켜 봅시다.
꽤 그럴듯하죠? 경의선이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할 것을 고려하여 아라뱃길 구간도 서해 5도 항로에 포함시켜 봤습니다. 단 아라뱃길은 인천공항 고속도로와 인천공항철도를 거의 비슷하게 따라가기 때문에, 중간에 공항(북한을 예비수요로 본 곳이죠)이 있는 영종도도 경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기존 서해 5도 통상항로는 팔미도와 초치도를 꺾어 정서향으로 항해하지만, 경인 아라뱃길과 영종도 북부 해안은 통상항로보다 북단에 있기 때문에 위 지도에서는 보다 북쪽으로 평행이동시킨 항로를 그렸습니다. 실제로도 이렇게 당겨 놓는 것이 항해 시간이 더 절약되기도 하고요, 통일 전에는 군사 분쟁 우려가 있어서 당장은 어렵습니다.
더구나 현재의 백령-인천간 통상 항로 거리는 백령도와 압록강 하구의 직선 거리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리고 팔미도로 우회하는 기존 통상항로에서 영종도에서 직진하는 신항로로 바꾸면서 절약되는 거리/시간만큼 영종도-서울 간 거리/시간을 상쇄시킨다면, 서울에서 신의주 사이의 편도 항로는 지금의 인천과 백령도 사이의 왕복 통상항로와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인천-연평 항로도 마찬가지고요, 황해도의 배후 항구가 해주인데다 지난날의 연평도가 해주의 부속도서 취급이었다는 사실을 봤을 때 이 항로 또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해주는 굳이 아라뱃길 없이 강화도를 거쳐 가도 거리 손실이 별로 없죠?
인천-백령 항로의 운항 방식은 현재 하루에 인천-백령 1회 왕복, 백령발 백령행 하루 1편성, 인천발 인천행 하루 2편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절기에는 편성이 조금 줄어듭니다.) 이것을 확장하면 중간 주박지를 백령도로 두고, 이틀에 서울-신의주 1회 왕복, 하루에 신의주-백령 1회 왕복, 서울-백령 1회 왕복으로 둘 수 있겠죠. 서울-신의주 왕복 편성은 신의주발 1편성, 서울발 1편성씩을 둬서 결과적으로 신의주, 백령, 서울에서 각 항구를 가는데 매일 2편성씩이 펑크가 나지 않게 하는 겁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으실 분들을 위해 그림으로 나타내자면 이렇습니다.
저기 해당하는 각 편성별 척수는 수요를 보면서 하거나 하는 식의 변형이 있겠죠. 현재는 당연히 인천과 백령을 오가는 것만 있는데, 이 경우도 인천이 기착지인 배는 2척이지만 백령이 기착지인 배는 1척뿐으로 이는 수요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죠. 그리고 중간 항구인 대청, 공항 등은 일단 여기서 제외하였습니다. 어차피 그런 곳들은 배를 붙이면 몇 분만에 도로 떼니까요. 다만 백령도만은 서울-신의주 간 항로가 실제로 운항되어 중간항구로 바뀌어도 항로 거리상 주박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다분히 높습니다. 풍랑이나 태풍 등의 이유로 중간에 편성이 통제되면 정상화 때 백업 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바리에이션으로 관북지역의 다른 항구도시 방면 항로도 만든다면,
대략 이런 식이 되겠죠. 이 경우 중간 기착지로는 항해 거리상 정중앙에 가까운데다 정박 시설도 갖춘(용기포 신항만) 백령도도 중요하지만, 다른 도시로의 환승 항구가 될 수 있는 초도도 중요해지죠. 연평항로라면 아라뱃길을 통해 영종도를 거치는 안 이외에도 한강을 이용한 항로를 만들 수 있죠. 이 둘을 엮어서 순환선을 만들어도 되고요. 순환선 항로로는 이미 덕적-울도 항로(덕적면 관내 하위 도서들을 순환하죠)와 인천-자월 항로(자월도를 먼저 도착한 뒤 자월면 관내 3개의 다른 하위 도서를 루프식으로 운항합니다. 6호선 응암순환을 생각하시면 쉬워요)라는 선례가 있으니, 서울-공항-연평-해주-강화-개성-서울로 이어지는 항로를 운용해도 괜찮을 듯 합니다.
대신 이를 실현하기 전에는, 남북한이 대결 과정에서 뿌린 기뢰나 그동안 항로로 사용되지 않아 쌓인 하저의 뻘흙 등을 제거하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또 현재 영종도 쪽에서 여객선이나 도선 운항을 하는 항구는 월미도 맞은편의 구읍나루와 공항 뒷편의 삼목선착장, 무의도 맞은편의 잠진항 등이 있는데, 이들 중 서울-신의주 항로 여객선 항구로 지정되는 곳은 공항과의 교통편 연계가 필요하겠죠. 셋 중 항로를 크게 이탈하지 않는 항구는 삼목선착장이지만, 정말로 삼목선착장을 신의주 방면 여객선 선착장으로 활용하려면 차후에 건설될 신도-영종도 연륙교가 여객선 통과가 가능한 높이로 지어져야 한다는 조건도 필요합니다. 아라뱃길의 가동 속도나 가동 가능 시간도 운용의 관건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