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노들 영산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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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뭐든 할 때마다 결계를 에운다. 다른 사람 꾈 때도 결계를 에워서 남들 모르게 꾀고, 다른 사람 팰 때도 결계를 에워서 남들 모르게 패고, 그렇고 그런 걸 할 때도 결계를 에워서 남들 모르게 한다. 뭐, 난 더 심한 놈들은 결계를 에워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니까. 그리고 일상에서도 결계는 빠지지 않는다. 나는 해경을 빼놓고는 언제까지나 학생이었지만, 패턴은 비슷하다. 결계 속에서 깨어나 결계 속에서 외출 준비를 하고 결계 속에서 나만의 주절거리기를 해대고 결계 속에서 내 공부를 하고 결계 속에서 일과를 정리하고 결계 속에서 잠든다. 아니, 기본적으로 지금 몸에 결계를 두르고 있잖아? 뭔데? 잠옷? 체육복? 이거 밤에 읽고 있는 놈들은 노는 티셔츠에 팬티만 입고 이걸 보겠지, 아니, 어떤 놈들은 그것도 없겠지. 그치만 모두에게나 평등한 결계가 있지. 바로, 잘 때 두르는 결계, 이불 말이다.
이불은 사람이 빡칠 때 죽빵 대신 호통을 날리기 시작한 시절부터 둘렀던 가장 기초적이고 원시적인 결계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열대 기후에 세팅된 동물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후권에서 몸에 실오라기 하나도 안 걸치면 눈 감는 순간 금방 가 버리거든. 근데 눈은 붙여야 활동을 하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눈 붙이면 다시 뜨고 싶어서 이용한 게 이불이라고. 또 모든 동물은 자기 영역을 만든다. 그럼 다른 짐승들이 쓰는 그렇고 그런 냄새나는 것들이 아닌 방법으로 영역을 나타낼 수 있는 게 뭘까? 이것도 바로 이불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이불을 시작으로 짐승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또 불을 다루고 금속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문명이 발달한 거지! 이게 옷이 되고 집이 되어 오늘까지 온 거고. 심지어 사람은 이불에서 태어나서 이불에서 죽는다? 왜, 그렇잖아. 처음에 아기가 태어나면 포대기에 싸여서 지내고, 눈 붙일 때마다 뭔가 덮고, 그리고 죽는 순간에도 이불을 덮어주거든. 이불은 문명과 짐승을 가르는 중요한 물건인 거지.
그래서 이런 이불 때문에 울고 웃는 사례가 상당히 많지. 스누피로 유명한 피너츠에서는 사시사철 시종일관으로 담요를 손에 끼고 다니는 라이너스라는 친구가 나오잖아? 얘는 이게 없으면 불안에 떤다는 설정도 붙어서, 한 번은 담요가 없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울먹이는 슬픈 에피소드도 애니판으로 나온 적이 있지. 이불은 자기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거든. 그리고 이불이 뭐냐, 개인을 지키는 것 아니냐? 사람은 깨어 있을 때도 위험에 처할 때가 많지만 자고 있을 때도 위험에 처한다. 바로 꿈 속에서 말이지. 어린 아이들이 왜 오줌을 쌀까? 꿈에서 무서운 일을 겪어서 싸는 거 아닐까? 그럼 오줌은 뭐냐, 아이들의 공포감이 현실로 나타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그걸 막는 이불은 공포감을 덜어주고자 온 몸으로 이를 막는 역할을 해 주는 거 아닐까? 뭐, 현실에서도 어릴 때 이걸로 심하게 고생한 사람들이 상당수이긴 하지만, 어느 이야기에서도 아이가 그걸 이불에 싼다는 이야기는 아이가 큰 시련을 겪는다는 이야기와 무관한 적이 없었어.
어릴 때도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서도 이건 변하지 않는다. 아니, 오줌싸개가 아니라(…)성장해서도 다른 이유 때문에 이불 속 보살핌을 받아야 하거든. 여자 사람들은 남자 사람과 달리 그 오묘한 생체 현상 덕분에 달이 차오를 때마다 어디론가 끌려가는 곳이 있잖아. 아니, 그렇다고 장기하를 떠올릴 필요는 없고. 덕분에 여자 사람들은 산업 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사회 활동에 큰 제약을 받았지. 이런 애로사항으로부터 여자 사람들을 지켜준 것도 마찬가지로 담요였다. 라고 하면 믿으려나? 못 믿겠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줘야 믿겠네. 우선, 담요는 사람이 빡칠 때 죽빵 대신 다른 것을 찾으면서 옷으로 변해왔지. 언제까지나 잘 때처럼 담요로만 에울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옷이 변하면서 사람의 괴로운 모습도 가려주고 지켜주게 된 거고. 여기에다 나중에는 담요가 전신이 아닌 일부만을 덮는 수준의 것으로 넓이가 변하면서, 여자 사람들이 달이 차오르면 함부로 끌려가지 않게 아랫배에 옷 말고도 이것을 덮어주어서 자기 자신을 지킨다. 이 말이지.
그리고 사람들은 이미 이불로 옷을 만드는 걸 넘어서서 수많은 짓을 해 왔지? 애초에 이불을 치마로 바꿔서 입어왔는데. 학부모 치맛바람이라고 학교를 주무르는 학부모라거나, 아니면 마셋에 나오는 마미처럼 치마 속에 머스킷을 잔뜩 넣어다닌다거나. 나도 내 자캐 치마 갖다가 이것저것 하련다. 자세한 건 아직 안 정했지만. 그렇고 그런 뜻이 아니니까 오해는 덜어주시길. 남자들은 이불을 치마 말고 뭘로 바꿔서 두르지? 망토 아니었나?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그런 망토. 근데 그 망토는 간지나 보이려고 입는 거잖아. 그래서 그게 미국산 슈퍼히어로의 아이콘이 되었고. 어디서나 망토를 두르고 혼자 걸어다니면 숨은 힘을 가진 협객처럼 보이는 포스가 잘잘잘 흐르고. 이걸 비집은 몇몇 여자 사람들은 사야카처럼 치마랑 망토를 같이 두르는 반칙을 저지르기도 하지.(…) 근데 공통적인 건, 치마나 망토로 바뀐 이불은 곧 ‘자기 세계’를 드러낸다는 거야. 넘어서면, ‘자기 힘’을 드러낸다는 뜻이기도 해. 자기를 지켜주는 이불은 결국 자기와 친해져야 자기를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리기에 이불 주인의 모습이 이불에 그대로 비치는 거지. 
이불은 자기를 지켜주지만 과하면 자기 세계에서 못 벗어난다는 교훈을 들어주기도 한다. 뭐냐면, 우야꼬 만화일기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든. 밤에 우야꼬가 잘 때마다 이불을 걷어차니까 할아버지가 꾀를 내서 이불을 덮은 우야꼬를 줄로 묶어서 발로 이불을 차지 못하게 막아. 근데 우야꼬 본인이 일어나 보니 웬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거야. 주변엔 아무도 없고. 나중엔 공포감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하지. 물론 우야꼬 자기가 원해서 이랬던 건 아니지만, 이불을 끈으로 묶은 것을 통해 과도한 방어는 자신을 세상에서 멀어지게 해 공포를 야기한다는 걸 알 수 있지. 왜, 다들 그러잖아. 젊은 날의 과오를 꿈에서 떠올리고 이불 차고 하이킥한다고. 이불은 자기를 지켜주지만 또 자기를 현실과 단절시키는 양날의 칼이다. 다들 조심하자. 상기한 사야카도 작중에서 자의식이 너무 강한 나머지 자신이 만들어낸 울분을 못 이기고 스러져 갔다! (어쩌면 이불을 어깨랑 아랫배에 다 두른 건 관계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이불은 개인의 결계다. 결코 집단을 위한 결계가 아니라고. 전시 고아원의 칼잠같은 특수한 경우를 빼면 이불은 다른 사람하고 공유하지 않는다. 심지어 군대 내무실에서도 한 이불 속에 분대원이 다 같이 들어가는 일이 없다. 그만큼 이불만은 나 혼자라는 의식이 강하니까. 하지만 이불 속에 들어갈 일이 혼자가 아닐 때가 있다. 바로, 서로가 서로를 하나로 인식하고 어떤 것보다도 뜨거운 열기를 느낄 때. 그래서 ‘이불 속에 둘이서’라는 어구는, 서로가 서로가 보통 사이가 아닌, 여기다가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의미가 되는 거야. 인생게임이라는 심즈에서조차 서로 친밀도가 일정 수준 이상 되지 못하면 더블 침대에 같이 못 잔다. 심지어 마작 만화로 유명한 사키에서는, 경기장 내 침실에서 치마까지 벗어 가지런히 개어 놓고 주인공 둘이서 누워 대화를 하는 장면까지 있거든? 이 둘은 끝내는 말까지 놓으면서 격식 따위 벗어던지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되는데, 개인만의 공간인 이불에 타인을 포용한다는 것은 즉슨 다른 이와 자신의 뜻을 공유할 뜻이 있다는, 즉 ‘사랑’을 한다는 거야. 그리고 이것이 서로 다른 성 사이의 관계였다면, 이것은 이불을 넘어 텐트를 이루고, 끝끝내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는 거지. 이처럼 이불은 서로가 서로를 공유할 수 있는 관계에서 가정을, 가정에서 하나의 울타리를 이루는 씨앗이 되는 거야. 오죽했으면 어디서 봤던 레크리에이션 책의 한 파트로 나온 엉터리 야영 놀이에서는 이불을 텐트삼아 쓰라는 이야기가 있겠나. 괜히 이불을 텐트삼아 쓰라는 게 아니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불은 뭐니뭐니해도 ‘사람’이다. 우리는 다른 것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 때문에 큰 웃음 하고 큰 울음 해 온 거거든. 사람이 행복하기에 모두가 행복하고, 사람이 슬프기에 모두가 슬픈 거야. 그러니 오늘도 어지간한 이불 속에서 발버둥쳐 온 나날을 돌이켜 보고, 사람이라는 이불을 찾아 달려 보자. 이불을 찾았으면, 모두 함께 날아가자. 그리고 이 아름다운 이불 문명 속에서 또 다른 이불을 만들어 보자. 그래서 문명이고, 그래서 세상이고, 그래서 사람인거야.


(원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