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노들 영산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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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장 안으로 소형과 함께 웬 짐승이 같이 달려들어온다.
“어, 이건 뭐니?”
개와 같이 생긴 짐승이 양선의 팔에 달려들며 껴안긴다. 조금 놀란 양선은 이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짐승을 달랜다.
“귀엽네. 넌 어디서 왔니?”
소형이 이 짐승에 대해 알려준다.
“아, 이 짐승일랑 저네 모임 동무 되는 사람이 가져왔습네다. 저 여우는 사람 좋아서는 아무나 막 따라다닙디다.”
북한에 있을 때 데리고 왔다는 모양이다. 보통 여우는 사람 앞에선 낯을 가릴텐데, 녀석은 사람이 좋아서 막 안긴다. 소형이 일을 마치고 하나원으로 돌아갈 때, 이상하게 청람장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저 여우는 선생님은 참 좋아하는 것 같습네다.”
여우는 소형은 코빼기도 관심 없이 계속 양선만 바라본다.
“그래? 음…하나원 다른 분한텐 괜찮은거야?”
“일없습네다. 안 그래도 저 여우는 넘어올 제 동무 좋아서 데려온 게 아니라 제 발로 왔으네깐요. 정도 들었지만 그 동무는 저 여우 별로 안 좋아합디다.”
여우가 양선의 눈을 맞추고 꼬리를 치며 간드러지는 울음소리를 낸다.
뭐 정말로 하나원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소형의 말로는 오히려 고마워했대나 뭐래나. 개도 아니고 대림동 한복판에서 여우라니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여느 개보다 귀엽고 충직한 태도로 대림동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특히 조선족 사람들은 저 여우를 보면 고향 생각이 나서 좋아한다고 했다. 청람장의 양선뿐만 아니라 휘섭도, 제연이도 여우를 좋아했다. 그동안 서울에서 여우를 보기 힘들어서였을까. 제연이 같은 경우는 학교 갔다 돌아와서 애들을 불러서 보여주기도 했고. 그러면서 청람장 여우는 대림동 명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골칫거리라면 고기를 안 먹는 양선이랑 고기를 먹어야 하는 여우랑 식성이 갈렸다는 정도랄까. 그래서 양선은 고기 대신에 두부를 썰어서 주곤 했다. 그치만 여우는 성에 안 찬 모양이다. 하릴없이 제연이가 여우를 데리고 이따금씩 도림천에 내려가면서 여우 밥을 찾아다녀야 했다. 가끔 가다가 쥐라거나 개구리라거나 맹꽁이라거나 없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여우랑 청람장 식객들이랑 사이 좋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 하루였나? 여우가 청람장 담 밖으로 가서는 한참동안 돌아오지를 않는다. 청람장 담은 있으나 마나하다시피하고, 여우도 담 밖으로 나가면 꼭 얼마 뒤엔 돌아왔기 때문에 그 날도 아무렇지 않게 그러려니 했는데, 이상하게 돌아오지를 않는다?
“얘 아직도 안 왔네?”
양선과 제연이가 같이 걱정한다.
“글쎄…안 되겠다. 내가 나가볼게.”
동네 이곳저곳을 뒤져보지만 여우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여우를 아는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감감 무소식이다.
“길쎄다, 이 여우 뵈지도 않던.”
“그래, 큰뚝배기 속에 잘만 있던 여우 어디로 갔디, 야?”
큰뚝배기라면 곧 청람장, 그러니까 집에서 멀리 안 가는 여우가 진짜로 어디로 갔을까. 불현듯 제연이는 여우랑 같이 도림천으로 산책을 나가곤 했던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아, 맞아, 거기야!”
도림천에서 여우한테 낯이 익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은 계속 걸어가본다. 하지만 도림천이 어디 방울뱀보다 짧은 내더냐. 해가 떨어지도록 여우는 보이지 않는다. 평시 새침한 제연이의 눈이 커지고 미간에 주름이 생기며 표정이 애절해진다. 진짜 문제다. 그리고 해가 종아리쯤에 걸려서였을까. 익숙한 짐승의 냄새가 제연이의 코를 건드린다. 아, 저기 있어! 달려가면서 냄새를 쫓는다. 어 역시! 그런데 뭐야? 왜 누워서 피를 흘리며 숨을 죽이는거야! 옆엔 개구리 두 마리가 납작하게 엎어져 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제연이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우를 부둥켜안고 큰뚝배기까지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들어온다.
“어떤 색기야. 용서 못해….”
여우의 가쁜 숨을 이어나가고 피를 연신 흘리고 있었다. 제연이의 가슴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다행히 제 오근우가 여우한테도 먹히네.”
회복계를 청람장 식객 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쓸 수 있는 현이가 급히 사당에서 대림동까지 달려와서 말한다. 여우는 겨우 편안한 표정으로 잠을 청한다.
“숨 쉬는 거 맞죠? 응, 됐네.”
현이도 여우가 걱정되었는 모양이다. 자고 있는 게 숨이 끊어진 걸로 보였는지 목덜미에 손가락까지 대 본다.
“근데 제연이는 여우 주변에 다른 이상한 건 못 봤어?”
“개구리 두 마리 죽어 있는건 있더라고.”
“말고는?”
“음…없었어.”
“이상하네. 그럼 여우를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제연이는 손등에 핏대가 설 정도로 주먹을 쥔다. 직접 핏덩어리를 본 그 광경이 자기 예전 모습이랑 겹쳐 더 끓어오른 것이리라. 양선은 다른 식객들이 돌아가고서도 계속 여우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동안 맛있는 건 꼭 여우부터 줄 정도로 사람 간호하는 것보다 지극정성으로 여우를 돌봤다. 그렇게 여우가 낫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여우를 곁에서 지키다 깜박 졸던 양선은 정신을 차려보니 놀라운 소리를 듣는다.
“선사님.”
아니, 캉캉거리고 짧게 짖기만 할 줄 알던 여우가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이거야말로 잠 확 달아나는 순간이다.
“으, 응응?”
놀라서 눈이 커진 양선이 답한다. 여우 눈은 양선보다 커서 반짝거린다.
“고마워요.”
그리고 양선에게 힘차게 뛰어들며 안긴다. 양선은 왼팔로 여우를 받쳐준다.
“오늘 낮에 들은 선사님 의뢰 때문에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래서 입을 열었죠.”
“그래? 뭔데?”
여우가 말을 이어나간다.
“나중에 구청장님하고 시장님 시정방문하시러 여기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치?”
“그 날 두 사람 살리면 세 사람이 죽고, 세 사람 살리면 두 사람이 죽어요.”
어?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여우같은 말이다.
“아니, 뭔 소리야? 두 사람은 뭐고, 세 사람은 뭐야?”
여우가 말을 잇는다.
“한 쪽은…으으, 무서워요!”
개구리 울음소리가 청람장을 별안간 뒤덮자 여우의 숨이 가빠지고 말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양선은 다른 쪽 손으로 여우의 배와 귀를 문질러 달랜다.
“…개구리를, 무서워하는거야?”
여우가 말없이 커진 눈에서 눈물을 흘린다. 양선이 말없이 귀와 머리를 손으로 덮자 그제야 천천히 말을 다시 이어나간다.
“둘 중에 한 쪽은…선사님한테도 위험할 거에요.”
양선한테는 수수께끼만 쌓인다.
“더 말할 시간이 없네요……. 선사님, 이번 일은 비밀이에요?”
양선이 눈 한 쪽으로 알았다는 사인을 한다. 그러자 여우는 다른 여우처럼 두 번 짧게 짖고 원래대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뭐고, 세 사람은 또 뭐야?’ 
“그럼 그 여우를 데리고 같이 경호하러 가.”
외삼촌 말씀이다.
“그런 큰 자리에 그런 걸 데리고 가도 되나요?”
“물론이지! 국가 정상들도 애완동물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분명히 동네 사람들도 좋아할 거고, 바깥 손님들도 좋아할테다. 외삼촌은 데리고 나가는 걸 추천한다.”
“그치만….”
“어허, 민생 시찰이잖아. 주민들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할거다.”
외삼촌은 십오 년 전 그 일 이후로 세상 일엔 잔뼈가 알알이 박혀 있다. 뭐 예전부터 사회 일 물어볼 땐 꼭 외삼촌을 찾았으니까. 혈육이라고는 이제 외삼촌밖에 없기도 하고. 불편한 몸에 보살펴 준 고마운 분이기도 하잖아?
“근데 개구리를 무서워한다고?”
양선이 물음표를 달고 말을 잇는다.
“원랜 안 그랬는데, 그 뒤로 개구리를 피한다더라고요.”
하긴 여우잡기 노래에도 있지 않았나. 여우는 개구리 반찬을 먹잖아. 근데 아무렇지 않게 개구리를 찾던 여우가 어째서 그렇게 변했을까.
마침내 민생시찰 당일이다. 행사는 동사무소에서 대림역 사이를 걷는 걸로 진행이 된단다.
조선노동당 폐당사태 뒤로 남한 치안도 상당히 안 좋아졌고, 잊을만하면 나오는 게 무슨 폭발사건이나 유명인사 살인미수 사건이다보니 동네는 많이 조심스러웠다. 당장 시장이랑 구청장이 나오는 시찰이기도 하니 그 얼마나 조심스러우랴. 경호 병력은 당연히 따라붙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었으니 이례적으로 동사무소에서 양선을 찾았던 거고, 양선도 그 문제를 알고 있었기에 의용경호로 나섰던 것. 청람장 식객들도 구역별로 흩어져서 자리를 담당했고, 여우는 양선이 직접 들고 나와 양선 품에 안겨 있었다. 주민들은 동네 마스코트가 나오니까 으레 그랬던 것처럼 귀엽다고 연신 눈길을 보낸다. 그렇지만 연신 시무룩한 반응에 주민들은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양선은 2호선 역사에 가까운 골목 동쪽을 맡았는데, 앞엔 중국인 식당이랑 닫힌 만화가게 한 군데가 있다. 지하 만화가게야 닫혔다고는 해도 가끔 주인이 와서 떨이를 벌이곤 했지만, 오늘따라 그 주인은 안 보였다. 그런데 그 만화가게 앞으로 다가갔더니 여우가 총에 맞은 뒤에 내는 그런 고ㅣ성을 내면서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닌가.
“어, 왜 그래? 진정해.”
언제나 그랬듯 몸을 얼렀지만 몸부림을 계속 부린다. 표정도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그리고 비스듬히 열려 있는 문 틈으로 개구리 한 마리가 튀어나오자, 여우는 그 고ㅣ성을 더 길고 애처롭게 내며 고개를 모로 이리저리 가로젓는다.
“어, 제연아? 다람인데, 잠깐 이리 와서 얘 좀 달래줘라.”
급히 제연이를 전화로 불러 여우를 진정시켜본다. 어휴, 조금 있으면 다들 오신다는데 이게 뭐야. 이런…어라? 뭔가 이상한 꾀가 난 양선이 손을 입에 대고 고심하더니, 이내 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만화가게 속으로 던져 넣는다. 그리고 일 분이 채 안 지났을까,
“엎드려!”
여우를 떠안고 있는 제연이를 만화가게 옆으로 같이 넘어뜨린다. 그리고 몇 초 후 터지는 굉음과 함께 활짝 열리는 만화가게 문. 동시에 주민들이 당황해서 시끌벅적해진다. 높으신 분 오시는데 이 무슨 어그로일꼬?
“제연아, 여기 나 대신에 꼭 잘 지키고 있어! 여우 잘 봐주고!”
그리고 양선은 만화가게 속으로 뛰쳐들어간다.
“아니, 저 아는 뭔 시끄러운 난리래?”
“무슨 무당연이 미쳐가지고, 뭔 응당질이래.”
제연이도 벙쪄서 언니 욕을 하는 주민들을 멍하니 바라볼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양선이 가게에서 가게 주인이랑 웬 낯설게 생긴 남자 둘을 끌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 어, 언니! 이 사람들 뭐야?”
양선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쉰 다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연다.
“역시 그랬어. 중국인 테러리스트들이야. 도림천에 숨어서 동네 이야기를 주워듣다가, 오늘 시장님 오신다니까 죽여버리고 동네 불지르려고 한 거라구.”
주민들이 또 웅성거린다. 아니, 그럼 만화가게 주인은 대체 왜 거기 껴 있던 건가.
“세상에 환멸감이 왔대나봐. 중국인 둘을 도와줬어.”
그리고 제연이의 품에서 여우가 나와 다시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양선에게 껴안긴다. 양선은 다시금 정성껏 여우를 어루만져주며 제연이에게 말한다.
“이 녀석이, 우리 동네 서울 영등포를 구해줬어.”
경광등이 멀리서 반짝거리고 사이렌 소리가 커져 왔다. 양선에게 잡힌 셋은 딱하다기엔 고까운 몰골로 그대로 널부러져 더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