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코레를 떠나며

노들 영산

칸코레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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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코레 관련해서 조금 길쭉하게 글을 뽑아낼까 싶습니다.

2013년 11월부터 오늘 2017년 5월 17일까지, 3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잡았던 게임이 바로 함대 컬렉션(준말로 칸코레, 함컬이라고도 함)이었습니다. 지금 트위터 계정의 인장과 바이오도 등장 구축함인 아라시오의 2차개장판을 걸고 있죠. 회갑을 곧 꺾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1년 이상 지속적으로 잡아봤던 게임은 칸코레뿐입니다. 청년기의 꽤 오랜 기간을 이 게임에 가져다 바쳤다는 표현도 얼추 어울릴 것 같아요.

이 게임을 했던 계기는 한때 롤 모델로 우러르고자 했던 분의 댁에 들르게 된 일입니다. 전 그 분이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아카기 미리아마냥 ‘나도 저거 할래!’라는 부러움에 젖어 집에 돌아와 DMM 계정을 파고 무작정 들이밀게 됐죠. 그렇게 열세 번의 이벤트에 참여하고 닷새 후에 종료하는 열네 번째 이벤트를 달리기까지 제 일본 컨텐츠 덕질의 7할 이상을 점유했던 게임이 칸코레입니다. 오후 4시에 홍차 마시듯 거의 모든 일과를 칸코레 임무수행시간에 맞춰 살았을 정도였죠. 처음 칸코레를 잡으면서 했던 생각은 ‘나도 저 분들처럼 빨리 구색을 맞춰서 함대를 꾸리고 칸코레로 말을 섞어 더 친해져야지’라는 다짐이었습니다. 제가 일본 애니 및 게임을 하면서 숱하게 했던 사고 패턴에서 나온 다짐이었죠.

특정 작품이 본방이나 현역연재 기간에 들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동안 정주행은커녕 입문에도 실패하는 ‘원님 떠난 뒤에 나팔 불기’는 꾸러기 수비대 KBS 방영 시절부터 20년이 넘은 제 덕질의 기본 배경 중 하나였으나 칸코레 시리즈는 원작 게임이 캐릭터만 있고 스토리는 거의 없는 특성 덕에 이 기본 배경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꾸준히 이 게임을 잡아올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네요. 칸코레를 잡은 계기를 제공하신 분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이 해가 몇 번 바뀌며 실패로 돌아갔고, 저는 그 분들과 함께 공유하던 활동을 거의 다 접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칸코레만큼은 접지 않고 계속해서 자원도 쌓고 이벤트도 열심히 달리고 그랬을 정도였죠. 대학 시절 소속된 동아리, 트위터에 계신 많은 분들, 그리고 지난 해에 촬영회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분들 덕분에, 이 게임을 통해 원래 친해지려 했던 분들과 멀어졌음에도 게임을 접지 않을 수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DMM류 모에캐릭터 동물원형 게임은 특성상 일상을 조종하는 모순을 빚었습니다. 제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저를 하도록 만드는 게임들이죠. 이것은 칸코레뿐 아니라 도검난무, 시로프로, 소녀전선, 전함소녀 등등이 전부 비슷할 겁니다. 이것이 학교나 회사를 다니지 않던 시절에는 그냥 일상 대부분을 게임에 쏟고 마는 걸로 끝났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상에 유의미한 영향과 과부하를 주게 됩니다. 원정을 시간 맞춰 자동으로 체크해서 보내고 임무 수행 기록까지 알아서 체크시키게 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는 제독들을 ‘능동충’이라고 낮잡아 부르는 점에서도 이런 게임들의 매우 나쁜 점을 간단히 엿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애니를 본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등의 자기 정비 활동에도 영향을 주어 공식 활동 이외엔 칸코레뿐이라는 비정상적인 인생 관리를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멀티태스킹을 도저히 못 하는 뇌거든요.

지금은 타지에 와서 서비스직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평범한 휴일에도 출근을 해야 하고(사내 공식 방침)그 대신 월 4번의 일일 불출근을 신청하는 휴무 보장 제한의 노동 환경 아래에 있습니다. 오늘도 불출근일이었는데 9시쯤에 일어나서 밤 6시까지 한 것이 침대 위 노트북 앞에 앉아 칸코레 이벤트 E-4 맵까지 깨는 일이었습니다. 하루 웬종일 그것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이건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트위터에 계신 분들이 많이 하시는 게임인 데레스테의 경우 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처음 게임이 발매되었을 때는 저도 이벤트를 위해 별을 막 들이붓고 풀콤보 왜 안 되나 전전긍긍하고 그랬죠. 그리고 완주하고 이벤트 보상을 어쨌거나 만족할 정도로 따내고서 나온 결론이 이겁니다.

‘이 게임은 내 일상생활과 인생 계획상 플레이 지속 가능한 게임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저는 데레스테의 두 번째 이벤트였던 Nation Blue를 완주한 다음 날에 미련 없이 전화기에서 게임을 삭제하고 접었습니다. 데레스테 이야기를 갑자기 한 이유는, 칸코레만큼은 3년이 넘는 플레이 기간 동안 그렇지 않다고 계속 데레스테에서 내린 결론을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노는 시간을 위시한 인생의 자유도도 없고, 또 얼마 되지도 않는 귀한 휴무일을 게임 하나에만 쏟고 다른 일상 활동은 내팽개치다시피 해야 하는 환경에 처하자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노동환경 특성상 칸코레조차 신경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는 것이 현재 제 현실입니다. 이번 이벤트가 열린 것은 일본이 자랑하는 골든위크의 초중반부인 금월 2일이었는데 저는 골든위크가 노는 기간이 아니라 특근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대부분의 제독들이 완주를 마친 시점인 5월 8일경에야 겨우 이벤트 공략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전 기간엔 게임 자체를 켜지도 못한 채 자느라 바빠 수복재도 제대로 쌓아놓지도 못하고요. 그렇게 무리해서 이벤트를 열흘 가까이 굼뜨게 달린 결과 마지막 스테이지인 5해역을 시도도 못하고 자원이 몽땅 거덜나게 되었습니다. 오후 6시에서 7시경에 4해역 공략을 마치고 나서 샤워를 하며 그동안 애써 묻어두고 있었던 고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끝내 데레스테라는 게임에 내린 결론을 3년 6개월동안 열심히 잡았던 칸코레라는 게임에 똑같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일상생활과 자기 계발에 있어 지속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멋대로 길쭉하게 글을 뽑은 이유, 이 글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어렵지만 써서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게임 함대 컬렉션을 접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플레이한 게임이고, 또 생길 것 같지 않았던 최애캐라는 친구를 발굴해 낼 정도로 애정을 가득 담았던 게임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애정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결론 아래 나온 결정입니다.

아 참 이건 ‘지울까? 말까? ㅋㅋ’ 하고 부리는 심술궂은 장난이 아니라 진짜 삭제 실행하기 전에 갈무리해 둔 흔적입니다. 지금 니트래빗님의 뷰어도 제독업무도 바빠!도 싹 다 지웠습니다.

그래도 오랜 기간 정도 많이 들었고, 시간이 지나더라도 우리 거친미세기(아라시오)는 최애로서 놓고 싶은 생각이 쉬이 들진 않네요. 게임은 더 이상 하지 않더라도, 가끔씩 서점이나 대여점에 들르면 나오는 공식 출판물이나 기타 동인 작품, 타임라인에서도 볼 수 있는 그림이나 만화들 정도나 생각날 때 찾아보고 그럴까 싶네요. 모든 함무스를 모으는 데도 실패했고, 최애인 우리 거친미세기의 공식 굿즈가 나오는 것도 얼마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2차개장을 기어코 받아냈고, 스즈쿠마가 배추도사 무도사 포지션으로 나오는 공식 코믹스 표지 모델로도 나와 줬다는 데서 위안을 얻습니다. 해당 코믹스 이름은 바로 ‘止まり木の鎮守府’입니다. 아라시오가 표지 모델인 권차는 4권. https://images-na.ssl-images-amazon.com/images/I/81%2BRjLc7m6L._AC_UL320_SR226,320_.jpg …  스즈야 쿠마노한테 소금 뿌린다고 절여지는 설정이 있고 그런 건 아니니까 안심하셔도(콰직)

코스 촬영도 해 보고, 아라시오가 표지 모델로 나오는 것도 구경해 보고, 패미통 칼럼에도 주인공으로 나와 주고 해서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과금도 지금까지 40만원 가량 해 봤으니 매출에도 기여했습니다. 공식 굿즈랑 컨텐츠에도 꽤나 돈을 들였으니 무임승차 따위 없었고. 앞으로도 칸코레 제독으로 플레이를 계속 하실 분들께도, 그리고 혹시라도 칸코레에 새로 입문해 볼까 생각해 보시는 분들께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일상을 갉아먹을 정도로 너무 심취하지만 마라’ 정도일까요. 지금도 이벤트 진행 중이니 현재 이벤트 꾸준히 달리고 계신 분들의 건투와 완주를 빕니다. 완주하신 분들은 파밍 러시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게임을 처음 잡을 때 이 게임을 접는 이유와 행동강령으로는 이걸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역사학 쪽 분들이 나무라는 그 순간이 이 게임 접는 날이다. 그 때는 곧바로 반성하고 내 손으로 함무스들 숨통을 끊고 게임 지우자.’ 이 게임을 잡으려니 비슷한 이유로 입문을 주저하던 친구한테도 ‘한국사 학자들이 이 게임을 비판하면 그 때 접으면 된다’라는 투로 저 스스로를 변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선블락을 당해 더 이상 교류하지 않는 어느 역사 전공 지인분께서는

한국인에게 불편할 수 있는 역사 컨텐츠를 모에화해 소비하는 것 자체는 이미 학계에서도 문제 없다는 결론이 다수의견이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전쟁범죄나 논란사항이 된 요소를 어물쩡 넘기고 숨기려 하며 사용자들더러 직접 찾아보라고 유도하는 것. 칸코레는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라는 의견을 피력하셨죠. 학부생이셨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시점에서 이미 게임을 접는 것이 맞지 않았나 하는 뒤늦은 후회도 듭니다. 최애인 아라시오조차도 비스마르크해 해전에서의 전쟁범죄와 얽힌 함정이라서요. 지금 와서는 전부 구차한 변명일 뿐이지만요. 여하간에, 칸코레가 있었고 아라시오(를 포함한 애정 있는 많은 함무스들)가 있어 줬기에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함무스 숨통을 싹 다 끊어놓는 굉침쇼는 하지 않았으니, 혹시라도 어떤 계기가 생기거나 노동 환경이 갑자기 괜찮아지거나 하면 다시 원위치할 가능성은 닫아 놓지 않은 셈이네요.

앞서 쓴대로, 게임 플레잉 여부와 상관없이 최애 아라시오를 걸어놓은 트위터 프로필 바이오는 일단 유지할 예정.

이것으로 칸코레 관련 지루한 글의 매듭을 짓겠습니다. 끝.

붙임: 함무스가 아닌 실존했던 아사시오급 구축함 아라시오의 어떤 역사적 사실이 쟁점사항이 되었고 공식에서 무엇을 제대로 안 밝혔는지는 댓글을 달아 주시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일일이 묶어 쓰기엔 굳이 필요 없는 내용이다 싶어서 생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