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구스쿠는 한반도의 읍성과 제법 비슷하다!!?

노들 영산

오키나와 구스쿠는 한반도의 읍성과 제법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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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리브레 위키의 ‘읍성’ 문서를 읽다가 갑자기 빠져들었습니다. 우연히 홍주읍성이란 물건을 알고 찾다가 이런 내용까지 간 거죠. 저는 슈리성의 데자부를 느끼고 더욱 꿀잼이라 생각했네요.

그 가운데 해미읍성 최고봉에 신사를 세웠다는 부분에서 제대로 뿜고 말았습니다.

(아니 무슨 구스쿠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게 우타키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냐하면, 오키나와의 구스쿠(오키나와식 성채)는 많은 경우 동쪽 자리, 또는 위엄 있는 자리에 성소인 우타키御嶽를 지정해서 성벽 속 벽으로 또 에우기 때문이죠. 일본과 오키나와의 통합을 강조하는 일본 학자들은 이것을 일본 신토의 신사의 프로토타입으로 보기도 하는데, 당연히 오키나와를 강제 합병한 일제가 이걸 가만 놔둘 리가 없었고 중일전쟁 즈음부터 옳다꾸나 하고 토리이……네 일본 신사의 필수요소자 모양의 게이트 구조물을 세우곤 했거든요. 그렇지 않은 곳도 여러 방법으로 이 곳이 성소임을 나타내는 장치로 안팎을 나누곤 합니다.

이것은 슈리성 공원의 공식 지도인데 지도에서 御嶽라고 쓴 곳이 바로 우타키입니다. 해당 구스쿠에는 소노향우타키園比屋武御嶽와 수이무이우타키首里森御嶽 두 곳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두 우타키는 토리이가 아니라 문과 돌담으로 에웠고, 아래 사진은 바로 수이무이우타키(사진 제공 슈리성 공원)로 어떻게 우타키를 에웠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동쪽 자리를 신성한 자리로 쓴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 공원의 유료구역인 정전과 그 부속동이 동쪽(지도에서 위쪽)에 있음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오키나와 건축에서는 동쪽일수록 높으신 분의 자리인데, 동쪽의 완전 끝은 인간의 자리로 안 쓰고 상제님을 마중하는 자리로, 성주나 임금님은 끝에서 살짝 반대편으로 당긴 곳을 잡죠. 위 공원 전체 지도에서 빨간 점 자리가 바로 그 자리죠.

이 정도면 슈리성 구조 해설할 때 해미읍성과 비교하면서 해설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한편 네이버 지도로 해미읍성 사진을 좀 봤더니, 맙소사, 오른쪽 절반에 우타키와 동일한 역할의 자리라고 생각해도 위화감이 없는 자리가 뙇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공교롭게도 일제가 신사를 세웠던 청허정 쪽입니다.

ㅋㅋㅋㅋㅋ Aㅏ, 내 나라 문화유산에서 류큐의 데자뷰를 읽고 좌절스러운 기분에 빠지기도 참 오랜만입니다. 이건 확증편향이에요. 아니 이건 진짜 일제가 뜯어먹기 너무 좋은 구조 아닙니까 ㅜ

더 찾아봐야 하겠지만, 지금 저 정자(청허정)주변에 원형탈모가 생긴 이유도 일제가 기어이 저 자리에 신사를 때려박으려고 주변 나무를 밀어버린 게 일제가 패망하고 자리 빠졌음에도 그냥 탈모로 남음…….이지 싶습니다 ㅠ

사실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도, 류큐 왕국의 왕성인 슈리성도 똑같은 비극을 겪어야 했지 때문이죠. 류큐처분으로 왕국이 망하고, 오랫동안 슈리성은 유구 왕국의 고유 문화 유산이 아닌, 일본의 지방 중 하나인 오키나와현의 대표 신사로 취급돼 방치되었습니다. 이에 오키나와현민이 된 뜻 있는 사람들이 슈리성을 보전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문을 두드렸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계속 무시하였고, 1923년에야 류큐 왕국의 고대 왕인 슌텐의 아버지로 전해지는 미나모토노 타메토모를 모시는 신사로 바꾸자는 안건이 받아들여져 겨우겨우 보수를 받게 되죠. 오키나와 입장에서 신사는 류큐 왕국의 고유 문화가 아니라, 전근대 일본에서 전래된 외래 문화입니다.

(위 내용은 서적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페셜 땡스)

오키나와와 한국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영혼의 쌍둥이 같은 웃지 못할 비극을 공유한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네요. 앞으로도 이런 것을 많이 찾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