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에서, 나아가서는 문학이나 이를 기반으로 만든 OSMU 컨텐츠(통칭 미디어 믹스)에서 여성이 작품에서 얼마나 주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검사하는 평가 측정기로 ‘벡델 테스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그동안 남성만의 이야기만이 쏟아지던 문화 컨텐츠계의 현실에서 얼마나 작품 속 젠더 균형을 이루었는지 좋은 지표로 사용되었죠.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 페이지나, 페미위키 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으셔요.
하지만 벡델 테스트는 비교적 오래 전에 개발된 평가 측정기로, 일본의 중요한 대장르 작품군을 형성하는 일명 ‘미소녀 동물원’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안해 본 추가 기준으로는,
ㄱ. 작품의 주요 제재가 되는 갈등이 있고, 이 갈등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이를 극복하는 데 있어 핵심 역할을 함
ㄴ. 특정 젠더 착취적인 문법을 작품 내에서 사용하지 않음
이 두 가지 정도만 있어도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미소녀 동물원을 대부분 거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소위 ‘난민캠프’라고 부르는 일상물을 ㄱ에서, 아이돌물을 ㄴ에서 거를 수 있겠죠.
간단히 이를 이용해 많은 작품을 걸러 보겠습니다.
- 우선, 한국의 여성 사병 군복무를 그린 웹툰 뷰티풀 군바리는 성전환 미러물의 대표예시지요. 이는 ㄴ만으로도 걸러낼 수 있습니다.
- 여신전생 시리즈의 이문록인 페르소나 3의 경우 주인공을 여주인공으로 정하면 얼핏 통과할 수도 있어 보이지만, 작중 불필요한 성희롱이 문제 의식 없이 묘사되는 부분이 있어서 통과시키기 어렵다는, 따라서 마찬가지로 ㄴ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 도사의 무녀는 통과시키려니 마찬가지로 ㄴ에서 걸리겠네요. 네네라는 등장 축생이 있는데, 도사들의 가슴 크기 보고 안길지 말지 판단하거든요.
한편 도사의 무녀 이외에도, 장난스럽게 페미괴작이라고 많이들 그러는 ‘투희물’을 ㄴ으로 많이 쳐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사로 변신시킬 때 불필요한 신체 노출을 강요하는 킬라킬이나, 몽환전사 바리스 같은 작품이 그 예시가 되겠습니다.
물론 일상물이어도 충분히 젠더 형평을 주제 의식으로 담는 방법이 있고, 특정 젠더 성 착취적인 코드가 들어가더라도 작품의 주제 의식에 합치시킨다면 젠더 형평이 퇴색되지 않을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벡델 테스트나 이에 대한 대안을 들이대서 작품을 쳐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젠더서사로서 우수한 작품을 발굴하고 보다 널리 향유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떤 분께서 벡델 테스트의 한계를 이야기하실 때 의미심장한 유머 한 토막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마무리해 보고자 합니다.
플라톤 계열 철학자 : “인간이란 털이 없는 동물이다.”
디오게네스 : (다음 날 털을 뽑은 닭을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