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의 칼날은 오키나와라고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이 곳 관광노동자들은 역사적 배경, 문화적 배경 덕분에 좀 더 다르게 봐 줄 거라는 실날 같은 기대를 했지만 그걸 기대하기에 불매운동은 차가웠습니다. 제4의 나라(류큐왕국), 저항의 나라(미군 이슈 등), 형제 도플갱어(역사적) 같은 떡밥이고 뭐고 없고, 당연히 평범한 일본의 지방 ㄱㄴㄷ 중 하나라는 인지가 한국 관광소비자에게는 우선했던 것 같네요.
무역도발과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진 시기가 7월 초였다는 것도 지역 관광업에 있어서는 불행한 부분인데, 오키나와의 월간 관광객은 네 번의 분기 중 3분기에 정점을 찍고 1월을 낀 겨울에 저점으로 내려가는 경향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모아야 하는 시기에 일제히 등을 돌린다는 것은, 이것은 그 자체로 파국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아래 그래프처럼 3분기엔 그렇게 많이 안 몰리고 1분기를 책임지니까 괜찮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 기조가 올해 안에 멎지 않고 도져서 그 책임질 1분기까지 인바운드객이 마른다면 그로 인해 나와 수많은 관광노동자가 흘릴 눈물이 얼마일지 감도 안 잡혀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한편 통계자료를 안 들여봐도 당장 어떤 관광지의 흥망을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항공노선의 증감편입니다. 이유는 흥하면 증편하고, 망하면 감편하는 수요·공급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기 때문이지요. 항공사는 수요 반응의 달인들이에요.
지난 번 포스트에서 소개해 드린 이 갓갓노선느님은 ‘내일’ 고별운행을 하기로 확정났습니다.
에어서울의 원래 의도는 이전 포스트에 소개해 드린 대로 10월 26일까지 자리 차는 상황을 봐서 만석의 기쁨이 이어지면 정식편성으로 승격하고, 아님 말고를 결정하고자 했겠지만, 안 그래도 모회사 경영난에 말이 많았는데 이번 불매운동으로 9월 1일부터 10월 26일까지의 모든 편성을 운휴하기로 했습니다. 에어서울의 공식 발표로는 ‘고별운행’이 아니라 ‘9월 1일부터 10월 26일까진 운휴’라고 하지만 저 운행 기간을 보면 운휴가 아니라 그냥 종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일이 고별운행 확정이고요. 특히 현지 노동자에게 꿈과 희망이었던 RS738편(분홍색칠한 부분)은 곧도 아니고 이미 그제(8월 28일-수요일 한정편성이므로)고별운항을 끝냈어요.
에어서울은 모회사가 지금 안 괜찮으니까 저래도 사실 납득 못 할 건 없는데, 태풍도 아닌데 끊어 놓은 티켓이 운항취소돼서 현지여행상품 취소신청 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들으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이건 오키나와가 아니라 일본 방방곡곡의 국제공항이 이런데, 공기수송을 하는 기내 사진은 예사고 치토세행 비행기편 예약했더니 없어졌다고 화 내는 트윗도 봤습니다.
지금 한국발 집객률이 평년과 비슷한 곳은 도쿄의 공항인 나리타와 하네다, 그리고 관광 수요가 아니라 업무 수요로 먹고 사는 센트레아(나고야)셋뿐이고 나머지는 공평하게 ¼가 갈려나갔습니다.
이 통계자료는 리트윗으로 트위터에 돌던 내용입니다. 스페셜 땡스 치토세도 나하도 심지어 한국인 양대 베스트셀러인 FUK랑 관공도 일괄적으로 25%가 깎여나간 게 아직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선합니다.
다음은 올 8월 초 한국-나하공항 감편·운휴상황을 류큐신보에서 정리해서 보도한 표인데요, 아까 쓴 에어서울 말고도 어지간한 저가항공들 나가떨어져 9월부터 주 0회가 확정된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추가로, 위 정리표가 나온 이후 피치 항공이 1달 동안 운휴를 확정지었습니다.
위 표에서는 운휴 안 한다던 피치(MM905·906)가 위 기사에서 1월 28일부터 2월 22일까지 운휴한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또 표 보시면 알겠지만, 김해-나하도 아시아나가 처음 런칭한 부산-오키나와 직행 항공노선인데 1호 항공사가 발을 빼 버렸습니다. 남아 있는 후발주자 진에어조차 주 7회가 아니라 4회만 운항합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좀 심각합니다. 이게 저 시기에 운휴하면 여기서 관광노동자 하는 사람들은 목숨 끊는 선택지 말고 고를 선택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겨레와 나랏님을 위해 목에 잠수웨이트를 감고 이어도로 뛰어들면 열사문 지어 주시나요? 1992년 김포-나하편을 처음 런칭한 아시아나항공의 한국-오키나와 직통편 독점 시대가 2012년 인천-나하 운항에 진에어가 합류를 끝으로 20년만에 역사의 저편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도로 2012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참담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잃은 수입만큼을 국내여행객(일본)이나 중화권에서 벌충하면 되지 않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그게 안 됩니다. 내일 모레가 9월이잖아요? 중화권은 대륙지구든 도서지구 3개소(대만·홍콩·마카오)든 동일하게 9월 학기제를 시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가족여행객부터 끊어질 것이고(입학, 진급, 입사), 일본도 9월에 여럿이서 올 수 있는 것은 취활 끝나고 돈 많이 남은 대학생 정도밖에 없거든요. 초중고는 9월 개학입니다.
한편 이번 추석은 매우 빨라서 9월 중순인데, 이때를 한국 인바운드객을 모으는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해서 현내외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분위기에 그동안 일본 갈 거면 진작 대만으로 빠지고 필리핀으로 빠지고 또 어디로 빠지고……해서 나온 결과가 오늘의 25%인데 얼마나 모객이 될까요? 이제 여기저기서 단말마를 내뱉고 스러져 갈 랜드사가 나올 텐데. 게다가, 인바운드 모객에서 비중 있는 조연이었던 홍콩도 지금 민주화 운동으로 관민이 충돌하면서 바람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이 상황에서 뭘 대체하면 대체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나마 여기는 중화권에서 한국보다 더 많이 모객되는 지역인데도 단말마가 나오는데, 그 반대로인 지역은 지금 어떻겠어요? 한국 아니고는 모객도 안 되는 곳이.
이 글을 정리하면서 느끼는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예요.
오키나와는 어지간한 최애캐 여럿을 모아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인생에서 쌓아올리던 금자탑이었어요. 자아 의탁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그걸 사육사가 비버 나무집 무너트리듯이 쉽게 부수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고, 그동안 몸담거나 의무로 몸담아야 했던 숱한 조직이 여러 사건으로 통째로 엎어지는 것을 겪으면서 인생의 궤적을 스스로 부정하고 비난해야 했던 것을 또다시 겪어야 한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여러분의 불매운동을 원망할 것이냐 하면,
아니에요. 여러분은 잘 하고 계신 거예요. 불매운동은 처음부터 오키나와 망하라고 시작한 것이 아님을 저는 모르지 않아요. 국민이 국가에 대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다면, 마땅히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고 또 그걸 국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해요. 저는 한국 국민은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어요. 그것은 나라 안의 사람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고, 나라 안의 사람이 나라 밖의 나라를 움직이는 것에도 해당되어요. 우리는 우리의 나라를 슬기롭게 컨트롤해서 의도한 바대로, 다른 나라를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일본의 식언과 무역 도발이라는 미친 짓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불매운동을 일본 스스로 책임지려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말과 행동으로 일깨워야 해요. 저는 그들의 책임을 연대하여 짊어지어야 하는 처지이고, 이것이 국민의 명령이라면 달게 응해야지요.
그저 ”여태껏 벌어진 모든 일은 개꿀잼몰카였습니다!”하고 2019년 G20과 남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이전으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차라리 이런 일이 제가 세상을 떠나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또 연대책임자로서 일본과 나눠 짊어지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 여기까지 인용한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평성 30년(2018년) 오키나와 입도·입국 관광객 통계 (PDF) 오키나와현청, 2019
이외에 오키나와현청의 통계 페이지에서 여태까지의, 또는 월별 현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일본어 자료 링크).
한국-오키나와 왕복 항공편의 운행편 감편 현황 기사 (일본어 링크) 류큐신보, 2019년 8월 21일 기사. 당일 발행본 제1면 메인 기사였습니다. 실제 종이신문으로도 인쇄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