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시기 전에: 내용이 많이 길어서 페이지를 대제목별로 나눴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I. 페르소나 5는 어떤 모습을 그린 게임이었나?
완연히 인본주의적 사고를 토대로 한 인본주의적 사회 문제 해결을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페르소나의 이전 넘버링 작품들이나 진여신전생의 다른 작품군도 다르지는 않다고 하지만,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와 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내린 결론은 ‘이 작품이 여태 나온 본가나 이전작에 비해서도 독보적으로 인본주의적이다.’네요. 여기서 인본주의란 ‘인간사 모든 문제는 항상 인간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책임과 수습 또한 오로지 인간만이 이룰 수 있다.’를 의미합니다. 인류 홀로인 세계. 어려울 수도 있는 서술인데 그냥 ‘절대자와 귀신 영혼 요괴 따위는 없다’랑 비슷한 말이에요.
참고로 저는 귀신과 상상 속 요괴(+절대적 존재. 그러니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돌아선 이유가 바로 병역복무예요. 승함근무를 하며 인간 이외에는 오로지 바다만을 마주하는 24시간을 여러 면모로 겪었는데 이 때 배에서 입는 모든 보은과 박해 뒤에는 오로지 동승하고 있는 직원과 대원(즉 인간)만이 있음을 깨달았었네요. 누군가가 부식을 넣어 굶지 않게 하는 것도, 누군가가 격실이나 그 비품을 씻어서 더러워지지 않게 하는 것도, 누구도 그것을 하지 않아 담당자를 제재하는 것도 모두 자연현상이나 요정의 보은 따위가 아니고 모두 인간이 하고/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들이에요.
갑자기 군 이야기를 왜 했는고 하면 페르소나 5에서 나오는 모든 초자연현상과 섀도, 기괴한 던전은 인간집단의 인지가 만들어 낸 존재이기 때문이잖아요. 이 모든 것이 인간이 빚어 낸 존재라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거죠. 그건 오직 인간이 한 짓이다.
이 작품이 지극히 인본주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다른 대목이 바로, 인간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인간 사회를 충실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했다는 부분이죠. 다른 소도시가 아닌 세계 1위의 대도시권인 도쿄를 본따 표현한 것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대중의 행동방식과 개개인의 생각, 그리고 어떤 특정 대상을 향해 보여 주는 개인과 다수의 반응이죠. 괴도 채널 설문결과와 댓글도, 메멘토스도, 슈진고의 NPC 학생들이 플레이어에게 대놓고 흉을 보는 모습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아무 생각 없이 숨 쉬듯 하고 있는 짓을 그린 자화상이에요. 정말 변태같이 도시의 바글바글한 인간군상 그리려고 온 힘을 쏟은 티가 나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했던 “오타쿠들은 인간을 관찰해야 하는데 도무지 인간을 관찰하지 않고 작품을 내려 하잖아.“라는 문장과 가장 멀리 있는 작품이 페르소나, 그 중에서도 특히 5라고 봐요. 그러니 작품에서도 항상 ‘모든 것은 군중의 인지에 따라 만들어진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겠죠. 절대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모든 사건의 과정은 사람(괴도단)이 사람(개심 대상)을 바꾸고(개심) 그 절대자조차도 사람(대중)이 만들고 받들어 탄생한 존재였죠. 절대자의 초자연현상처럼 보이는, 하지만 사람의 일.
완연한 인본주의와 덧붙여 페르소나 5가 변태처럼 그려낸 모습은 바로 오늘날 일본 사회상일 거예요. 마침 일본 밖에서도 인지도가 높고 알기 쉬운 가상의 도쿄를 그렸으니,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정말 안성맞춤이었죠. 플레이어가 보호관찰 생활을 시작하는 욘겐쟈야부터 뉴스에서 자주 보던 시부야, 도쿄 가이드북에 빼 놓을 수 없는 부도심과 기분전환용 관광지, 여기에 도쿄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교외까지. 당장 플레이어의 마을인 ‘욘겐쟈야’도 실존하는 지역은 ‘산겐쟈야’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것처럼, 진짜 도쿄를 그대로 집어온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변형해서 그렸지만, 오히려 너무 속속들이 잘 묘사해서 무척 감탄했어요.
지리적인 측면 이외에 잘 고증했다 싶은 것은 ‘이건 일본이다’ 싶은 사회 면모였는데, 예컨대 국회가 헤게모니를 잡은 정파가 힘을 키우고자 국회(중의원)를 해산하고 선거를 열어버리는 정치 특성이라든지요. 또 당선 경력이 있으나 어떤 이유로 파멸을 맞고 사전선거운동을 불사하며 계속 승산 없어 보이는 도전장을 내미는 꾸준 출마자(요시다 토라노스케)라든지. 이건 한국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유형이지만요. 깨알 같겠지만 나중에 또 쓰고자 하는 부분이 일본 대중교통의 정기권 고증이요. 플레이어가 욘겐쟈야에서 학교가 있는 아오야마 잇쵸메까지 움직이기까지 두 번을 갈아타는데, 사실 두 노선은 서울 4호선처럼 이어져 있지만 관할회사가 달라 정기권 인식이 꼬이니 실상 내렸다 타고, 또 정기권은 이용기간 중에는 무한탑승이 가능해서 내내 돈 안 내는 부분입니다. 아마 욘겐쟈야에서 아오야마까지 아무 생각 없이 한 방에 갈 수 있단 사실을 아는데 시부야에서 굳이 내렸다 타는 모습에 어! 하고 위화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일철덕🤭
한편 이건 노렸다기보단 제작진이 일본 사회에 묶여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배어 난 부분 같은데…청소년을 선택받은 자로 지정하고 그들에게 계속 무거운 짐을 지우는 여정을 강요하는 부분이요. 이건 전후세대 작가들이 기성세대에 의해 전쟁을 겪고 기성세대에 실망한 뒤 나오는 일본 애니 만화의 작품 기조라고도 하는데, 페르소나 5는 오로지 10대뿐만이 아닌 어른의 적극적인 개입이 두드러진 점에서 또 돋보이는 것 같아요. 전작까지의 커뮤니티, 즉 코옵을 맺을 수 있는 비중 있는 조연 중 적지 않은 수가 10대 입장에서 모두 기성세대 사회인들이고, 특히 야인이지만 정치가인 토라노스케, 아예 현직 검사로 주연에 가장 가까운 사에, 그 외 연인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많은 이들이 그 예시죠. 특히 청소년이 주축으로 모든 사건을 오롯이 맞는 전후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경향과 가장 대립하는 대사도 있죠.
“이 다음은 어른들이 할 일이야.”
정말 꼰대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 어른이기에 해야 하는 말이기도 하고 사실상 작품 주제 의식과도 맞닿아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