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2017년 1월부터 오늘 새벽까지, 총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게임 ‘함대 컬렉션’의 구축함 아라시오의 공식 일러스트를 트위터 종합계정의 프로필 사진으로 썼습니다. 한글 이름 ‘거친미세기’를 2014년부터 붙이고, 17년 이전에도 간간이 아라시오의 사진을 프로필에 걸기도 했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사진은 그동안 트위터에서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였던 아라시오 일러스트 8장과 헤더로 사용한 삼양 거미새 해물라면과의 합성사진 1장입니다.
처음 함대 컬렉션을 시작한 2013년 11월에 아라시오를 만나고, 7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최애 캐릭터로 받들 만큼 애정을 깊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 게임을 2017년 5월에 그만둔 이후로도(←링크) 만우절 같은 특별한 때가 아니면 프로필에서 그를 내리는 일 일절 없이 일편단심으로 트위터를 했습니다. 그랬으나 아라시오를 프로필에서 내리기로 결심한 계기는, 어제 무심코 타임라인에서 어떤 영상 클립을 보고 여태껏 경험해 본 바 없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패닉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영상은 역사적, 국가적으로 민감한 소재가 나옵니다. 재생시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재생이 힘드신 분들을 위해 어떤 영상인지 요약한 글이 다음에 이어집니다.↓
트위터 아이디 @501st6 님의 트윗으로 해당 트윗과 함께 동영상 링크가 있습니다.
위 영상은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의 원작 코믹스에서도 나왔던 에피소드입니다. 14권의 19번째 에피소드인 ‘원격조정 대해전’이고, 한국 정발본에서도 빠지지 않고 실렸습니다.
영상을 재생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어떤 영상인지 간략히 소개해 드리자면, 도라에몽의 비실이 등 2명이 일본제국 해군의 전함(수상함)에 올라탄 도라에몽과 진구를 함상폭격기(제로센)로 쓰러뜨려 잠수함에 갈아탄 도라에몽 일행에게 보복을 당하는 영상입니다.
이 영상을 보고 그 다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영상 앞에 붙은 트윗 ‘지금은 방영하지 못할 듯한 도라에몽’이란 문장과 트윗을 올린 사람의 프로필 사진인 ‘스트라이크 위치스’의 주인공 미야후지 요시카, 그리고 함대 컬렉션의 프로필 사진을 쓰고 있는 저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은 유소년기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지코 F. 후지오의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돼 오늘날까지 아사히 방송 네트워크에서 방송되는 장기 방영 전연령 애니메이션입니다. 최근 10년 동안에는 방영된 바 없어 보이는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일본제국 해군의 애창 군가였던 군함 행진곡(←링크)과, 전함, 실제 해군 항공대에서 운용했던 제로센, 대공요격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실제와 흡사하게 고증해 소재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또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이들 일본제국의 2차 세계대전 군사 장비 제원을 모에화, 의인화, 연출 바꾸기와 같은 변환 장치 없이 날것 그대로 재제로 이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제까지 해당 장르들의 참모습은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한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까지 ‘가상의 작품은 현실과 다르므로 구분해서 감상하면 된다.’라고 하는 오랫동안 일본 장르 팬들의 원칙이자 개인적인 신념으로 명심해 두었던 것이 여지없이 깨지면서, 여태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깨닫고 제 자신을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함대 컬렉션, 스트라이크 위치스 등의 장르를 직간접적으로 향유하면서, 앞의 개인적인 신념만을 믿고 너무 무신경하게, 또 무비판적으로 향유한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반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상의 문학작품,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은 ① 비록 그것이 실화가 아닌 허구에 그치더라도 향유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장하는 제재와 사건을 본받아 현실에서 똑같이 흉내내게 만드는 위험성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② 보다 심각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사건과 제재를 소비자의 욕구 충족을 위해 침소봉대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욕구 충족을 위해서라면 이들 소재를 쉽고 가벼이 취급해도 괜찮은 것으로 굴러떨어뜨리게 하는 위험성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사건과 군사 장비 제원을 모에화해 창조한 캐릭터를 꾸며 스토리텔링 상품으로 매매할 때는 이 두 가지 주의사항을 지킬 필요가 있으나, 인용한 트윗에서 드러나는 이에 대한 무신경함과 해당 장르를 제1향유장르로 삼는 분들 가운데 호전주의와 국수주의를 드러내는 분들이 점점 자주 눈에 띄는 현상 등을 보아 앞으로 일본과 일본을 품은 아시아태평양 사회가 짊어질 미래가 걱정되는 현실에 마음이 복잡합니다.
저 또한 함대 컬렉션을 오랜 기간 원작 게임과 공식 굿즈 구매 등을 통해 향유한 입장으로서, 이와 관련해 몇 번 문제행동을 타임라인에 저지르기도 했고, ‘현실과 가상은 잘 구분하면서 보기만 하면 돼요!’라는 다짐을 방패로 실제로 그러지 못하시는 분들에 대해 아무 생각 없었던 등, 자칫 미래에 생길 수도 있는 막대한 인류의 손해와 후손을 향한 부채 상속의 포괄적 가해자였음을 통감하고 사죄드립니다.
이 취지에 따라, 7년을 굽어보는 최애캐의 프로필 사진을 트위터 계정에서 거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의 제 행동은 덧붙여서, 오늘날 지금 이 순간에도 해당되는 장르 모두에 발을 담그고 계신 다른 분들로 하여금 이런 사실을 깨우치고 더 이상의 향유를 중단할 것을 계도하고자 실천, 아울러 발표한 것이 아님을 밝혀 두는 바입니다. 또한 오늘의 이 결정이 앞으로 칸코레와 최애캐 아라시오의 향유와 소비를 종신 중단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자 합니다.
다만 이들 작품을 향유하시는 다른 분들은 앞서 쓴대로 여전히 현실과 가상을 잘 구분하고 향유하시고, 작품에서 활용한 소재들이 실제로는 어떠했는지, 또 어떻게 해서는 안 되는지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사오며, 다만 이들 작품을 향유하시는 다른 분들은 앞서 쓴대로 여전히 현실과 가상을 잘 구분하고 향유하시고, 작품에서 활용한 소재들이 실제로는 어떠했는지, 또 어떻게 해서는 안 되는지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사오며, 오늘 제 결정은 그동안 이들 작품을 소비하면서 그렇지 못했던 제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역사 앞에 짊어질 양심과 책임에 따라 내린 혼자서의 결정임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