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와 대만의 밀월 관계: 대만 유학생을 위한 국내선 전세기편을 통한 고찰

노들 영산

오키나와와 대만의 밀월 관계: 대만 유학생을 위한 국내선 전세기편을 통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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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현 출신 대만 유학생 81명을 칸사이 공항으로 입국시킨 뒤, JTA의 전세기편을 보내 특별히 칸사이 공항에서 나하 공항으로 직행시켜 집에서 자가격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내용의 류큐신보 기사가 보도되었다. (링크)

「ただいま」ー。台湾に留学する沖縄県出身の学生ら81人が、JTAのチャーター便を利用して台北から帰郷しました。帰国支援で国内線をチャーター運航するのは全国で初めてです。(류큐신보/2021년 7월 1일)

오키나와와 대만이 보여주는 이웃관계는, 대만-일본의 밀월관계 그 이상이다. 한중일에서 가장 이상적인 이웃나라 관계를 뽐내는데 저것은 그 예시이다.

위 그림은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놓았을 때 오키나와와 대만의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노란색이 오키나와현, 붉은색이 대만이 관할하는 영역이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가까운 해외는 대만이고 대만에서도 중화권 타 정부 관할을 제외하면 오키나와가 가장 가깝다.

오키나와와 대만은 국가가 장려하지 않아도 매우 능동적으로 교류한다. 오키나와에는 대만 유학 학원이 이따금씩 보일 정도고, 2019년까지 오키나와의 외국인 관광객은 대만 관광객이 가장 큰 비율을 점할 정도(40% 정도)였다. 국제관광에서 중국 대륙지구에서 송출하는 여행객은 항상 대만지구의 그걸 압도하는 것이 상식인데(절대인구수에서 유리하므로), 오키나와에서는 그게 깨진다. 오키나와로 오는 중국 대륙지구 여행객의 비율은 20% 가량. 불매운동 돌입 이전 한국인 여행객과 2등 자리를 다투었었다.

그렇다면 대만-오키나와의 친선 그 이상의 관계는 얕게 잡으면 어디부터 시작될까?

1871년 류큐 왕국에서는 미야코 섬으로 돌아가던 조운선이 풍랑으로 대만 섬에 표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와중에 조난 선원들 중 54명이 대만 원주민(파이완)에게 피살되는 비극이 벌어진다. 이것을 빌미로 1874년에 일본이 직접 대만을 치러 가는 대만 출병 사건이 벌어지고, 청에게서는 류큐의 피해민을 대신해 위로금을 받으며 대만에 대한 관리 철저를 요구한다. 류큐 왕국은 1879년까지 단계적으로 일본에 병합되어 일본제국 오키나와현이 되고, 나아가 1894년 청일전쟁을 통해 대만을 식민지로 확보한다. 그 후 오키나와현에서 해외 이민을 떠나는 디아스포라가 시작되고 많은 이들이 총독부 대만에 건너가 살기 시작한다. 세계대전 직후엔 해외·현외 교역이 제한되자 밀수경제의 축으로 대만에 의존하며, 오늘날까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대만-오키나와 민간교류가 이어져 온다.

일장기와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나란히 나부끼는 대만-일본 합작회사 호텔 콜렉티브의 풍경.
(구글 스트리트 뷰/2020년 11월.)

(구글 스트리트 뷰 링크)
(구글 지도 링크)

이곳은 오키나와의 요지에 지은 호텔 콜렉티브다. 합자회사인데 바로 대만과 오키나와 자본의 연합자본이다.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 소속이기 때문에 한 쪽에 일장기를, 그리고 대만을 영유하는 중화민국의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나란히 게양했다. 호텔이 있는 국제거리는 서울 명동급의 위상을 자랑하는 번화가인데, 구글 로드뷰를 통해 보면 아예 버스정류장을 끼고 있고, 근처에 애니메이트가 가까운데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자랑스럽게 나부끼는 걸 확인 가능하다. 세계 속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와 중화민국 외교의 현실을 알고 있다면 사뭇 귀중한 풍경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역사적인 관계를 알아 봤다면, 대만에서 돌아온 오키나와 출신 유학생들에게 관공-나하 전세기를 마련해 준 사업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대만과 일본은 모두 백신 접종 계획에 있어 모두 녹록지가 않은 현실에 처해 있다. 대만은 세계가 자신들을 일레이나 동정심으로 일관되게 대한다는 외교 현실(==하나의 중국)을 역이용해 나라 문을 봉쇄하고 내외국민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락다운). 그래서 작년에 방역에 성공했지만 백신 수급을 중국에 의해 제지당하고 변이주를 막지 못하며 새 시험에 들었다. 일본의 백신 접종 현황에 대해선 따로 소개하진 않겠지만, 오키나와에 한해 특히 부진한 접종률과 백신 확보로 더 고생하는 중이다. 타 도도부현에 적용하지 않는 긴급사태가 아직 유효하다.

지난 1년 반 남짓 기간 동안, 오키나와 출신 대만 유학생들은 이런 이중고를 겪는데, 물리적인 대만-일본 출입마저 막혀 있었다. 그 파탄에 빠진 한국-일본 간에도 출입은 막지 않았다. 비자 신규발급이 끊기고, 특별입국절차와 레지던스 트랙 그리고 제출서류가 늘었을 뿐이지. 드디어 대만과 일본 사이에 출입이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이제 대만에서 오키나와로 돌아오는 길은 절대반지 부수러 가는 길만큼이나 멀고 험하다. 현재 일본에서 국제선편을 날리는 곳은 남서쪽부터 순서대로 후쿠오카·칸사이·센트레아·나리타 이렇게 4개소뿐이다. 보면 알겠지만 나하공항은 없다. 한국에 입국하는 사람은 현재 특별입국절차와 자가격리 14일이 있듯, 일본에 입국하는 사람도 레지던스 트랙 및 14일 격리대기가 필요하다. 공항에서 입국 직후 신고한 격리시설까지 어떤 대중교통의 사용도 엄금되고 여기엔 국내선 선박·항공편이 포함된다. 따라서 집이 오키나와현인 사람은 해외에서 돌아오면 마음에도 없는 타향에서 입국 당일+자가격리 14일을 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공항들은 후쿠오카·오사카·나고야·치바(←도쿄)다.

그런데, 전세기를 쓰게 되면 전세기는 ‘입국 직후 이용을 엄금하는 대중교통’이 아니기 때문에, 이 학생들은 레지던스 트랙을 끝내고, 곧장 오키나와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전세기엔 오키나와 돌아가는 유학생만 탈 테니까. 나하에 가면 육상이동은 가족 차든 대절 차든 잡아서 타면 되니까. 오키나와에 국제선 직항편이 없어서 오키나와 집에서 자가격리를 못 하는데, 직항편 하나로 오키나와에 바로 돌아가서 오키나와에서 자가격리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유학생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인도적인 호사다.

더불어 특정 국가에서 돌아오는 특정 도도부현 출신 유학생을 이렇게 몸소 전세기로 에스코트해 오는 사업은, 기사 초엽과 요약 트윗에서도 밝히듯이 전국 최초 사례라고 밝히고 있다. 그 영광의 첫타가, 바로 대만에서 오키나와까지다.

한국인에게 대만은 중화권인데 대륙에서 떨어진 곳에 그치고, 오키나와는 일본에 있는 지방 ABCDE 중에 하나일 뿐일 수 있다. 그러나 둘을 한데 놓고 보면, 중국과 일본이라는 이분법 분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보물 찾듯 밝혀낼 수 있다. 대만을 알기 위해 오키나와도 알아보고, 오키나와를 알기 위해 대만도 알아보는 것이 둘 중 어느 한 쪽만이라도 이해하기에 중요한 증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제주에서 동중국해를 끼고 해안선 반환점에 있는 먼 나라가 아니고, 한국과 지금까지 함께 했고 앞으로 독자적인 파트너로 상대할 날이 올 수도 있는 중요한 이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