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오랜 기간 실패를 거듭하던 하늘의 궤적 FC(2004 신작)를 오늘에야 겨우 엔딩까지 달려서 씁니다.
어차피 FC만으론 반쪽짜리 스토리고, 이미 1/5세기 동안 다른 분들이 열심히 총평을 하셨을 테니 다른 관점에서 평하고 싶었습니다.
바쁜 사람을 위해 결론부터
진행 막바지 들면서 떠올랐던 심상이 이것입니다.
아니 이거 고도의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돌려까기처럼 됐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무슨 가문이에요?
현임 황사(차기 일본 텐노 제위 계승내정자)인 후미히토 황사가 키코 비와 함께 꾸린 3자녀 가문입니다.
금상(현임 재위 텐노)나루히토 텐노에게는 5살 터울 친동생이 되고, 즉 아키히토 상황의 차남이기도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의사항: 시대적 배경
영웅전설 가가브 사가가 끝나고 궤적 시리즈라는 장편 시리즈의 첫 편인 하늘의 궤적은 본편을 2부작으로 나눠 FC와 SC로 각각 2004년과 2006년에 발매했습니다.
당시 텐노는 아키히토였고, 직계 남성 황족이 앞서 쓴 당시 황태자 나루히토와 친왕 후미히토뿐이었죠.
두 아들 모두 슬하에 딸을 각각 한 명, 두 명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도 아들, 즉 아키히토 상황에게 손자는 아직 없던 때입니다.
후미히토 황사가 친형보다 한참 일찍 혼사를 치렀습니다. 이 때문에 후미히토의 두 딸이 황녀 아이코 공주보다 언니였습니다. 사촌으로서 터울도 10살 가량 났죠.
게임이 처음 발매될 당시 아이코 공주가 만 2세가 갓 지났고(2001년생)여성 황족에게 텐노 계승권을 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물 밑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때였습니다. 정말로 당시 황태자 다음 직계비속이 딸밖에 없었기 때문에, 궁내청에는 발등에 불이 엄습한 상황.
후에 여성 텐노 승계 문제 이슈는 허무하게 묻히는데 이 때는 궤적 SC가 발매되는 2006년입니다.
후미히토 내외에게 아들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그게 왜 하궤 FC 하다가 생각이 났는데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인 클로제 때문이었는데,
그는 바로 여왕가의 몇 안 되는 직계 손녀 공주이기 때문이지요.
왕위 계승을 놓고 방탕한 숙부 뒤낭 공작과 대조되는 이미지를 유지하며 플레이어를 계속 놀라게 하지요.
아키히토 상황 재위 당시 친아들들인 나루히토 당시 황태자와 후미히토 당시 친왕은 각각 부부생활을 꾸리며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권력투쟁을 계속합니다. 주로 자녀의 성장과 훈육에 대한 부분으로 겨루기를 했었죠. 일찍 태어난 후미히토 슬하의 두 공주가 예쁘다거나, 개방적인 풍모를 보인다거나 하는 반면 늦둥이로 태어난 당시 황태자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는 이지메를 당한다거나, 학교생활을 힘들어한다거나 같은 안 좋은 풍문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후미히토 황사와 키코 비의 부적절한 행동거지와 잘못된 자녀 양육 방식이 계속해서 입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큰딸 마코 당시 공주(코무로 마코)의 혼사 소동으로 민심이 바닥을 찍었죠. 텐노가의 유일한 장손 집안이란 사실이 무색한 정도였습니다. 황사 본인은 해외 공무 중 성매매를 했다, 난봉꾼이다, 우익 인사와 놀아난다, 황실 일에 뒷전이다 같은 안 좋은 풍문을 일소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릅니다. 저 중에 사실은 아닌 것도 섞여 있겠지만요.
뒤낭 공작이 똑같게는 안 해도, 루안에서 처음 에스텔 일행의 앞길에 어깃장을 놓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왕좌에 안 어울릴 사람이란 인상을 팍팍 풍기죠. 예를 들면 멀쩡한 투숙객 호텔 방을 묵고 싶다고 빼앗는다든지.
아이코 공주가 게임 발매 당시엔 유년기라 부각되진 않았지만, 소년기와 청소년기에 걸쳐 차디찬 시련을 견뎌내며 성장합니다. 도쿄대 진학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잠깐 돌았을 정도로 학업에서 성과를 이루고, 그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사생활에 흠 없이 방정한 자세를 유지하여 끝끝내 사촌보다 후한 민심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촌 남동생(히사히토)과의 사이도 돈독한 면모를 보이면서 일본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죠.
물론 미래가 이러길 바라며 이런 설정을 게임에 엮은 게 아니겠지만
많은 현대 군주제 국가의 왕실 인사들이 스스로의 처신과 수행에 따라 민심을 얻기도 잃기도 합니다. 잘 몰랐었던 것에 비해 가장 크게 매력을 가지게 된 FC 한정 캐릭터가 클로제였습니다. 도검소녀를 꾸준히 좋아해서기도 하지만 일찍 알았으면 더 좋아했을 듯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에스텔만 바라보고 오래도록 끝마치지 못했던 숙제가 하늘의 궤적 FC였습니다. 이제라도 수료식을 처음 마친 만학도의 마음으로, 궤적 최신작까지 근시일 내에 달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