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사람을 위해 먼저 추린 이번 글의 결론과 요약
우리가 놀러 가는 여행지엔 언제나 ‘사람’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지와 시설의 호스트인 직원과 주민들도 여행객과 동등한 인격을 가지고,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이들이다.
들어가기 전에: 다음을 읽고 나서 쓴 글이라서.
민중의 소리, 정혜연, ‘하와이 대화재와 관광객’, 2023년 9월 2일 기사
BBC, Graeme Baker, Hawaii fires: Jason Momoa warns tourists not to visit Maui, 2023년 8월 13일 기사
그리고 트위터의 @cat_cons 님이 올리신 다음 타래를 읽고 나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물론 위 레퍼런스 일체도 이 분의 타래에서 인용했고요.
※다음 글은 다음 장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P 시즌 2 제 5화
본론
‘사회성’은 누가 누구에게 요구하는가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회성’의 실체에 대해서다.
사회성은 항상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높은 자들이 강요하는 가치이다. 괴롭고 아프더라도 내색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주어진 일은 빵꾸를 내서도 안 되고, 금세 돌아와서 당연히 아무 일 없이 원래 했던 그대로 기능해야 한다. 그게 내가 초가삼간을 잃었거나, 신체 일부분을 상했거나, 내 가족 구성원이 갑작스레 변을 당해 세상을 떠났어도 그렇다.
이것은 ‘돈을 버는 일‘에도 적용되어서 돈을 받고 평가당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항상 포커페이스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처신을 강요받는다.
소비자 정체성을 가진 관광객과 손님은, 관광지에 들어선 자신을 낮은 신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이 신분의 증표인 것처럼 굴며 관광노동자와 영업자에게 앞 문단까지의 내용을 다그친다.
어제 재해로 인해 가족이 죽고, 내가 장애를 입고 몸을 다쳐서 너무 아파서 울고 싶고, 집도 절도 잃었는데, 이 모든 것을 잃고 나앉기 이전과 똑같은 표정과 태도로 쇄도하는 관광객에게 인사하고 환대(호스피탈리티)를 제공해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갑 자리에 있는 자들이 을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똑같이 다그치는 내용들이다.
왜 아무 표정이나 짓지 못하게 하지?
왜 입장 바꿔서 생각하는 것은 한쪽만 해야 되지?
소비자 정체성과 해외여행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소비자 정체성과 해외여행이란 것의 본질이었다.
기사(앞 칼럼)에서 길게 소개했었지만, 사실 해외여행이란 관념을 상당수 세계인은 항상 목 말라했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해내는 데 있어 도덕적 책임감을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었다. 한국은 해외 왕래 자유 단절의 시대(1953년부터 1989년까지 약 1/3세기 가량)와 절대 빈곤을 이겨냈다는 서사까지 전 국민이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해외여행에 대한 도덕적 부채감을 지고 싶어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소비자 정체성은 ‘나도 이거 하고 싶다.’ 를 현실로 이뤄내고 자랑하는데 모티베이션을 준다. 그렇기에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고 책임을 따지지도 않는다.
‘그건 범죄인데.’ 에 들어가는 영역이어도, 소비자 정체성은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소비자 정체성에서 소비 대상에게 기대하는 것으로는 ‘내 기분을 만족시킬 것‘ 이 최우선이다.
때문에,
- 기분 나빠지는 상황
- 하기 싫은 것을 시키는 상황
이런 상황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기 기대와 기분을 거스르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상대가 동등한 인권을 가진 동등한 인격이란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고 모두 악마가 된다. <가짜 사나이>에서 침 떨어뜨리는 훈병을 찾아낸 이근 대위처럼.
“이 새끼 뭐야? 너 인성 문제 있어?”
[가짜사나이]에서, 침을 떨어뜨리는 꽈뚜룹을 잡아 꾸짖는 교관 이근 대위의 모습. 소비자 정체성으로 무장한 여행지의 관광객은,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판단한 현지의 어떤 모습을 이근 대위처럼 꾸짖고 싶어하기 무척 쉬워지곤 한다.
1. 아주경제, 정석준 기자, [오늘도 유튜브] “인성 문제있어?” 진짜보다 가짜가 대세인 세상, 2020년 9월 29일 기사.
2. 가짜사나이 1화
자기 의식주와 가족과 심지어 자기 신체 일부를 잃은 사람이 목 놓아 우는 것과,
훈련 중에 침 떨어뜨리는 것이 똑같은 일인가?
그러나 소비자 정체성에 골몰하면 자기 기분을 잡쳐 놓았다는 이유, 그것만으로 똑같이 갈궈야만 하는 일이 된다. 여기 이런 소비자 정체성에 인권과 인격의 자리는 없다.
마음 속의 삼각형
많은 사람들은 도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했을 때 마음이 따끔거리는 현상을 겪어 괴로워한다. 이것을 북미 선주민 중 하나, 나바호인들은 ‘마음 속의 삼각형‘(나바호 삼각형)이라고도 불렀었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이런 잘못을 하는 것을 주저하기도 하지만, 이미 이런 잘못을 했을 때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아니라고 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소비자 정체성에 골몰해 달려온 소비자는 ‘갑’으로서, 잘한 일이든 잘못한 일이든 어쨌든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마음 속의 삼각형이 작동해 자기 몸을 째고 파찰음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비자로서 남들이 다 하고파 하는 소비를 해냈다는 영예가 갖고픈 것이지, 그 소비를 위해 더러운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나쁜 놈‘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케이스 스터디: 평범한 사람들 중 왜 어떤 이들은 반페미니즘을 주장하고 나서는가
다른 이야기지만 상당수 반페미들의 행동 양태도 이것으로 설명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자기는 아무 생각 없이 가졌던 사고방식과 행동이, 갑작스럽게 ‘나쁜 짓‘으로 규정받고 나도 ‘나쁜 자‘로 규정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케이스 스터디: 넷플릭스 드라마 D.P 제 2시즌에서
※다음 문단은 다음 장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P 시즌 2 제 5화
같은 방법으로 드라마 DP 2기 6화에 등장한 박성우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안준호가 싸움 중 말한 사과에 대한 반응이다. 안준호가 던진 말에 박성우의 마음 속 삼각형이 구동되기 시작했고, 박성우는 이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어디서는 이것을 ‘허탈해져서’ 라고 해설해 놓았다. 지금까지 내가 쓴 내용과 거리가 많이 멀다. 그래서 이 해설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각설하고 많은 이는
‘내가 잘못을 저지른 나쁜 사람‘으로 규정당하는 것을 실제로 그걸 저지르는 것만큼, 혹은 그것보다 싫어한다는 뜻.
해외여행은 기본적으로 비행기라는 교통 수단을 통해 이뤄진다. 한국은 육상이동 가능한 육로 국경이 존재하지 않아 더더욱 그렇다. 머 기후위기 측면에서는 그렇다 치자, 해외에 갓 들어간 소비자 정체성으로 중무장한 해외여행객의 행태는 더 말하기도 지친다. 동남아시아에서 현지인에게 험하게 대하다 보복을 당해 객사했다는 이야기, 이 안 좋은 이야기가 이미 수십년 전부터 해외여행 괴담처럼 전래된다. 소비자가 됐다고 해서 내가 겪기 싫은 일을 당했을 때 현장의 사람들을 막 대해도 되는 것이 아닌데.
소비자 정체성은 인류가 조금만 참으면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쉽게 망쳐 놓는다. 더 인간적이고 지구에 더 도움이 될 의사 결정과 연대의 기회를.
예컨대 ‘코스트코(Costco)를 우리 도시에서도 다닐 수 있게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지방 사람이 있으면,
“코스트코가 지역에 생겨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을 그 사람에게 했다고 가정해 보겠다. 그러면 그 말을 한 사람은, ‘그게 없다면 대신 지역 유통업이 말라 죽고 지역이 더 황폐화되는 상황을 차단할 수 있다’ 는 가치가 있어도,
“그래서 내가 지방을 해치는 놈이란 것이냐!”
라는 말로 얻어맞게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상생과 연대가 안 되는 것은, 그런 사람이 많아서일 것이다. ‘내 마음의 삼각형이 작동해서 내 가슴을 후벼파고 절단내는 것‘을 차단하고 싶은 심보가 우선하는 사람. 위의 코스트코 문제, 페미니즘의 가치를 거부하는 문제, 안준호한테 민감하게 반응하는 박성우처럼.
그러니 해외여행을 꿈꾸기 전에 미리 꼭
해외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물론 상당히 많다. 당연히 하면 좋은 기회가 되고 나와 내가 속한 사회를 메타 인지를 통해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해외여행을 한다고 해서
- 이걸 다 얻어가지 못할 수도 있고,
- 해외여행을 누구든지 할 수 있지도 않고,
- 무엇보다 해외여행만이 저것을 해내는 유일한 방법인 것도 아니다.
소비자 정체성의 연장선에는
- ‘하고 싶은 것은 뭐든 이뤄야 한다’는 욕심과,
- ‘해냈다’는 자기만족과 허영심과 허세와,
- 그것을 안/못 한 사람은 가엾고 딱해 보이는 고약한 선민의식이 도사린다.
욕망과 루키즘, 확증편향은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소켓이라고 항상 트위터에 썼었다. 소비자 정체성은 내 기분을 좋고 고양해 줄 수는 있어도, 그런 사람이 사람임을 포기하게 하는 돌가면 같은 악마의 유혹임을 항상 주의해야만 할 것이다.
북미 원주민의 ‘마음 속 삼각형‘이 작동하는 것은, 그 사람을 해치고 못살게 굴려고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인류와 사회와 지구와 우주 전체를 유해한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게 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그런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