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다음 만화를 읽고 쓴 트위터 타래이다.
그리고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올리신 분의 타래 초두에 인용트윗이 쏟아졌다.
개인적으로도 목구멍에서 가래 끓듯 올라오는 어떤 응어리가 가득했었다.
생애 경험에 이입해서 감상글을 쓸 수도 있었으나 내 인생에 대한 호된 메타인지가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
따라서 이 글은 트위터에서도 읽을 수 있다.
바쁜 사람을 위한 결론
현실인정과 바라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쪽은 남자 후배 쪽이다.
이 결론에 전제한 것
먼저 전제하는 것은
- 남자후배는 선배한테 성애적 접촉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 여자선배는 후배와 비슷한 다른 남성에게 심신이나 재물상 상해를 크게 입은 일이 인생 경험으로 존재한다.
이다. 양 쪽의 입장을 최대한 유리하게 놓고 쓰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하였다.
이 문단 이후 선후배의 지정성별 및 젠더 표기는 생략하였다.
사람의 기본 욕구와 권리에 대한 문제
모든 사람은 관계맺기에 대한 욕구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 전에 ‘안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곤 한다.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에서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관계맺기보다 우선한다.
이런 욕구를 보호받고 충족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 권리 중 하나일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은 각자가 살아 있는 그 자체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천부인권),
권리가 다른 권리를 해하지 않을 때 그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인권선언을 시작으로 이후 제헌/개헌된 세계 각국의 성문헌법 앞부분에서도 이를 명시한다.
그러니까 후배가 선배에게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는(로맨스까지) 사이로 인정받고 싶다는 것,
선배가 후배한테 위협받지 않고 안전히 지내고 싶다는 것 모두 정당한 욕구이자 권리이다.
두 권리가 서로 충돌하지만 않는다면.
후배 진단
후배부터 진단을 해 보겠다.
후배는 작중 모습으로 미루어 보면,
정말 유감스럽게도 모르는 사람과 친구 되는 방법도, 친한 사이 되고 싶은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도 잘 모르고 있다.
본인의 사교성과 능력 대비 메타인지가 정말정말정말 높이 요구된다. 물론 본인이 되고 싶은 것이 친한 사이인지, 친구인지, 연인관계인지도 정확히 알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후배는 자기가 선배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도 모르거나, 무시할 가능성이 무척 높은 상태다.
또 정말 친밀한 사이가 되려면 해야 할 일/안 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다만, 이것이 사람 사귈 때는 구박을 받고 미움받는 트집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서받지 못할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교성 떨어지는 것 자체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용서받을 수 없는 천하의 개쌍놈들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사교성이 떨어지더라도 연인관계를 맺고 싶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상대방이 여기에 응해야만 하는 의무 같은 것은 없다. 즉 거절당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배 진단
이제 선배를 진단할 차례다.
우선 작중에서도 확인 가능한 선배에 대한 사실: 선배는 후배와 연인관계를 맺는 것을 거부했다.
문제는 이런 ‘거절’을 했을 때 얼마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상황을 끝낼 수 있느냐이다.
선배가 인생경험 초기에 진짜로 비슷한 남성에게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받았다면, 비슷한 사람을 회피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나 물체에 나쁜 일이 있었을 때 그것을 피하게 되는 습성도 있다.
그 원인제공을 사람이 했다면, 비슷한 사람을 거르고 싶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설사 선배가 그 후배를 위험한 사람인 줄 ‘착각’했더라도 후배를 피하고 싶은 것은 정당하다.
안전 또한 정당한 욕구이고 권리니까.
이미 수많은 여성 및 여성으로 젠더링당한 사람들이 폭행, 추행 같은 폭력을 생애 경험으로 가지고 있기에 독자들이 선배한테 공감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선배 입장에서 후배는,
입마개 안 하고 목줄 푼 멍멍이를 만난 것과 같을 것이다.
또 (장전여부 상관없이) 총구를 정면으로 향해 겨누는 총 든 사람을 만난 것과 같을 것이다.
단순 권리 수준을 넘어 생명권을 위협받는다고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타래에서 조금 빗겨가는 이야기지만, 흡연권과 혐연권에 대해서 한국 헌재에서는 혐연권이 흡연권에 우선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흡연권은 제한했을 때 사생활 정도만을 제한받지만,
혐연권은 생명권과 직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담배 때문에 즉사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돌아와서 두 권리의 충돌로 대입하면,
후배는 자기 욕구가 부정당해서 속상한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선배는 생명권을 담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설사 후배가 선배를 물리력으로 폭행하거나 강간하거나 살인하거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추가로, 성별이 이 문제에서 아예 자유롭지는 않아서
한편 세상에서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신체능력과 체격이 더 강하고 큰 쪽은 주로 남성신체를 가진 쪽이다.
불특정 다수 중에서 지정남성 한 명과 지정여성 한 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견준다면 지정남성 쪽이 지정여성 쪽을 해하기 더 쉬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특정 매칭을 시켰을 때 생명권이 위협받기 쉬운 쪽은 많은 경우 지정여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다시 나오는 결론
따라서 자기 욕구를 꺾고 권리를 물러야 하는 쪽은 후배 쪽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