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테고리를 만들어 나온 이유
1990년대 꿈 많고 상상력 넘쳤던 시절 노들나루를 간직하고자 만들었습니다.
카테고리 방향에 대해
카테고리를 만든 계기
1993년부터 서울 동작구 노들나루에 살기 시작하여, 그곳에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생애 첫 초등학교에 입학해 5학년 1학기까지 다녔습니다. 초등학교를 노들나루에서 마치지 못하고 전학을 가야 했으나, 이후 인생에 좋지 못한 사건을 연속해 겪었습니다. 이를 통해 노들나루를 실마리로 한 동작구 및 영등포권, 서울 서남권을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기에 1990년대 동작구 및 영등포구, 관악구 등 영등포권을 그리운 이상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때 모습을 2000년대부터 차츰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척 뼈아팠습니다. 2025년 현재 예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곳도 군데 군데 생긴데다, 빛나던 1990년대 동작구 및 영등포권의 모습을 모르고 지역에 자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앞으로 1990년대 동작구 및 영등포권의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에 저는 하루라도 일찍, 그때 모습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카테고리를 만든 이후의 방황
‘고향’이지만 ‘고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그 현실
군사독재기 이후 지금까지, 노들나루를 포함한 동작구 및 영등포권은 서울 부동산 일원으로 개발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사회가 이어져 왔습니다. 저는 이 곳의 부동산을 가져보기는커녕 정식 학교를 졸업해 보지도 못했고, 그때 사귄 친구들과도 연락하지 못하며, 해당 지역 주민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이 규정하고 부정하는 나의 과거 소속
반면 제가 졸업한 학교의 지역과는 결코 어울릴 의사가 없고, 경제생활을 하고 싶지도 않으며, 원가족이 지금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면 죽는 날까지 그곳에 놀러도 일하러도 가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원가족이 그곳에 생활하고 있고, 소속학교가 모두 그곳이라는 이유로 저를 그곳 사람으로 규정하고 낙인 찍을 것입니다. 또한 그곳은 한국에서 이상향처럼 여겨지는 도시이고, 상당수 사람들이 터 잡고자 하며, 기업이 좋아하여 회사를 꾸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제 고향을 노들나루 및 영등포권으로 규정하고 돋보이고자 하는 노력은 비웃음을 사기 일쑤였습니다. 이 과정 전체가 21세기 이래 인생 상당기간에 걸쳐 이뤄진 도전과 조소의 연속이었습니다.
칭친와이 활동가가 건넨 힌트
그러다가 제게 용기를 주고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글을 소개드립니다. 바로 홍콩의 예술가 칭친와이(程展緯)의 인터뷰입니다.
우리가 맥도날드를 이길 수 있을까요? 실제로 맥도날드를 사들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는 홍콩 전체의 맥도날드를 되찾고 싶습니다. 자본의 맥도날드는 주주들에게 속해 있죠. 이 ‘소유’는 하루 만에도 매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맥도날드에서 함께한 기억은 누구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면, 맥도날드와 단절하는 대신, 언젠가 우리는 자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맥도날드를 소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전문)
부동산은 막대한 자본이 있어야지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법적 절차와 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부동산 등기를 통한 소유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소유는 아니라고 짚었습니다. 바로 ‘기억하고 간직하며 공유하는‘ 방식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그런 날카로운 힌트를 칭친와이 활동가가 짚어 주었습니다.
다시 용기를 얻어
“제 고향은 노들나루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것을 비웃거나 거짓말로 치부할 사람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노들나루에서 어렸을 때 살고 있었고, 유치원을 다녔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실이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1990년대 노량진역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읍내’였고, 조금 더 가면 영등포 롯데백화점과 경방필백화점에서 주말 시간을 보냈으며, 용산 전자상가가 지척이었다는 기억은 진짜입니다. 오늘날 노들역 5번 출구 근처엔 흥겨운 본동시장에서 장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고, 사육신묘 너머엔 래미안트윈파크 이전에 가칠목 마을이 있었다는 것, 이런 사실을 저뿐만 아니라 당시 노들나루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저 중에 일부라도 똑같이 기억하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 평생에 걸친 노력과 시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기 위해, 또 길이길이 기억하고 함께 노래하여 1990년대 노들나루를, 동작구를, 영등포권을, 서울 서남권을 소유할 수 있기 위해 계속해서 이 글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집필 방향에 대해
처음 카테고리를 만들었을 때 방침: 사진을 준비하고 글을 나중에
글을 쓰는 동안 사진이 먼저인지, 글이 먼저인지 판단하기 힘들었고, 글을 쓰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았던 만큼 글을 쓰고 올리는 것이 꽤나 힘겨웠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이 준비되면 그 다음 글을 쓰는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노들나루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닌 현실적인 여건상, 과정을 진행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업무나 미션을 진행하는 방식이 유연하지 못해서, 처음에 정한 것을 먼저 마치지 않으면 그 뒤에 하기로 한 것을 시작도 못하는 버릇이 있어 더 진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수정 방침: 글을 먼저, 사진은 나중에
그래서 조금 과감하지만 새 도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처음 방침과 거꾸로 하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글을 먼저 쓰고 사진은 준비되는 대로 부연하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는 쇼츠와 인스타그램이 우선하여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면 인기를 얻지 못하고 주목도 받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풍경을 지체 없이 구경하게 된 것은 극히 근래의 일입니다. 원래 그것을 담기 위해 시도한 노력이 바로 문자이고, 글입니다. 영상과 사진이 탄생하기 전 인류는 글을 통해 기억을 퍼트리고, 공유했습니다.
요즘 시대 조금 어색하고 답답하고 칙칙하더라도
글을 통해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고 답답하고 칙칙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전통적이고 원래 인류가 썼던 방법인 만큼 적응이 어렵진 않으리라 기대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그리고 기억이 남아있을 때 최대한 빨리 기억 보전 작업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pigonada, “홍콩 | 노동하며 저항하는 예술가 칭친와이, 맥도날드와 싸우다”, 플랫폼.C, 202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