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기간 2008.11.19 ~ 2008.11.19 (1일)
컨셉 사진에 담는 출사여행
지난 수요일(19일)날, 수능도 끝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어디 가 볼 데 없나 생각했더니
인천의 차이나타운이 생각나더라구요.
옮겼습니다.
<사진-해질녘의 구로역>
그래서 인천역을 향해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지요.
그러나 인천 방향 급행열차는 동인천역까지만
가죠.
할 수 없이 동인천역에서 내린 다음 주변 지리를 잘 몰라 꼼짝없이 완행열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꽤 추웠습니다. 해가 부천쯤에서 떨어지더니 결국 급행열차에서 내릴
때 사라졌거든요.
(동인천역도 찍었으면 좋았겠는데 사진이 없습니다. -_ㅜ)
그리고 뒤늦게 등장한 인천행 완행열차를 타고 인천역에
내렸는데, 종착역이라 그런지
다른 역보다 소박했습니다.
건물도 1층밖에 없고, 굳이 말하자면 지방 간이역을 보는
느낌이었을까..하여간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옛날엔 수인선도 다녀서 궤도가 더 있었겠지만요. (지금은 표준궤로 복원중이라고
합니다.)
<인천역 주변>
ㄴ사진이 많이 어둡습니다. 편집처리를 해야 되는데 타 계정에서 가지고 오느라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_ㅜ
인천역 주변은 바다와 가까워서 그런지(인천항이 바로
앞이죠)
바다 냄새가 풍겼습니다. 거기까진 좋은데 떡밥 냄새-_ㅜ가 섞이는 건
별로더군요.
이윽고 광장 너머로 보이는 차이나타운 입구….그런데,
패루(牌樓)가 있을 자리에 패루가 안
보인다? (근성체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인천역 광장 맞은편에 보인다는 차이나타운의 관문, 문제의
패루가
이렇게 장엄하게 서서 맞이해 줄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뭡니까
-┏
조금은 실망스럽더군요. 다만 나중에 확인한 사실은, 중국 웨이하이
시에서 석패루를 다시 기증한다는 겁니다.
(음,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니었구나)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웅크리는
겨울이 아닌 활기찬 봄이나 여름에 다시 가서
새로 태어난 패루가 우리를 맞이하기를 바라야겠습니다.
(군대 가야 되는데-┏)
그래도 패루가 있던 터 앞에는 안내도가 반갑게 저를 맞이해
주더군요.
일단
제가 사전에 알아 두고 있었던 것은 공자 석상과 중국 절인 의선당, 삼국지 거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기념품점이나 식당을 보면서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는데요,
우선은 기념품점을 가기로 했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기념품점은 이렇게 중국식 연등, 치파오 등을
매달고
창문으로 상점 내 물건들을 모두 보여 줘서 지나가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위에 사진에 나온 기념품점 말고도 수많은 기념품점들이 있는데요, 간혹 ‘의천검’
이라고 하는
목검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가짜 뱀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가검이나 불상, 중국 삼신상도
있고요)
어떤 물건들은 재미있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는 원래 팔괘가 그려진 구리 부적(?)을 사려고
했으나
상점에서 8000원이라는 말에 기겁을 하고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대신 소형 연등을 2개 샀는데, 그것도 합쳐서 5000원이나
합니다.
이 지역의 기념품들 중에는 치파오나 모자 같은 의상, 그리고 사자상이나 불상, 인형
등이 많은데
전부 한결같이 한국인의 통념을 조금씩 벗어나는 수준의 가격으로 관광객들을 울리곤
하죠.
뭐..돈이 남는 분들은 가 보셔도 상관 없습니다. (여섯 자리로 붙는 가격표도
봤습니다.)
덧붙여 북성동 주민센터는 주민들이 화교라는 점을 고려하여
외관을 한국식 가옥과 중국식 원구단 둘을 섞은 형태로
만들었는데
꽤 이색적이더군요. 사진은 있으나 워낙 어두워 부득이 이 블로그에는 올리지
못했습니다. 아쉽습니다 -_ㅜ
제 1패루 ‘터’ 를 넘어 바로 나오는 언덕을 오르면 차이나타운
내에서는 그래도 높은 건물인 두 식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좌측의 건물은 청관이고, 우측의 건물은
공화춘입니다.
사실 저 공화춘 같은 경우는 예전에 있었던 중식당 공화춘을
기려
새로 지은 듯 한데 왠지 인천시와 인천 중구청의 인위적인 지원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듯
해서
약간은 언짢았습니다. (사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차이나타운은
찬밥이었잖아요)
물론 GS25에서는 저 공화춘이랑 계약을 맺어 자장면과 짬뽕 컵라면을 팔고 있긴
하지만요.
옛날 공화춘이라는 식당이 자장면을 최초로 소개한
곳이며
개화 이후 중국 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역사성도 깊고요. 실재로 메리트는 꽤
높은 편입니다.
저 두 건물이 보이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틀면~제 1패루 쪽보다는 약간 한적한 식당가가
나옵니다.
중국인들이 찾던 절인 의선당도 근처에 있고요.
도중에 허기에 지친 저는 의선당 건물과 딱
붙어있는(-_-ㅎㅎ)
만다복(萬多福)이라는 식당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진시황을 지키던 토용이 바다를 건너 식당을 지키고
있군요-,.-ㅋㅋ
실제 중국의 가옥처럼 꾸몄기 때문에 나중에 나들이 가서 들러도 괜찮은 곳입니다.
하지만 너무 비싸요
이 식당에서는 따스한 차와 함께 해물국수를
먹었죠.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옆 건물인 문제의 의선당을
들렀습니다.
아, 그리고 의선당이랑은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붙어
있더군요.
왠지 오밀조밀한 도시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네덜란드형 건물이 생각나
재미있었습니다.
(바로
아래 나오는 사진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왼쪽이 만다복이고, 오른쪽이 의선당입니다.)
원래는
주변의 중국인들이 예불을 드리기 위해 많이 찾아왔지만, 해방 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네 자체가 쇠퇴하게 되었고, 아무도 찾지 않아
거의 버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랬다가 무당파 쪽에서 수련장으로 쓰기도 하고, 지금은 동네 주민들의
모금으로
복구 공사를 해서 제법 모습을 갖췄습니다.
절 내 건물은 총 3동이었습니다. 그리 크지는
않았고요.
역시 어두워서 자세한 부분은 찍지 못했습니다. 안쪽의 건물 하나는 노인정으로
쓰느라
찍기 뭣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면 마당 한가운데에 탑도
있고
건물 한 동은 실제로 예불당으로 쓰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실 도교 사원으로 기대를 했지만 도교적인 이미지는 딱히 보이지 않더군요. 그런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아, 뱀발로 또 다른 동은 의선당
기념품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발길을 반대로 옮겨 뒷산 쪽으로 올라가 보니 대리석으로 만든듯한
패루가 나왔습니다.
이름은 선린문이라고 하는군요. 비록 제 1패루는
없었지만 그래도 번듯하게 제 3패루가 나타나니 꽤 반갑더군요.
(아, 그리고 제
2패루는 나중에 나올 공자 석상이 있는 계단길상에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1패루처럼 개보수를 위해 중구청에서 철거했고요, 제 1패루나 3패루에
비해 규모는 작습니다.)
저 문 너머는 뒷산 공원입니다. 잠시 산 위의 공원에 올라서 바다를 보기 위해
서성였습니다.
조금 올라가니 석정루라는 팔각정이
나오더군요. 낮에 왔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었지만
해가 워낙 일찍 떨어져서 그냥 야경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멀리서 바다를 보고 싶었거든요)
여담이지만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의 낙서는
끝내줍니다.
그리고 잠시
돌아서 삼국지 거리라는 곳을 지났습니다.
삼국지 거리에는 삼국지 이야기를 적어놓은 부분과 삽화가
있어서
시간이 아주 남아도는 사람은 낮에 한번쯤 지나면서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정상에서 시작해서 먹자 골목에서 끝나도록 한 구성은
별로였습니다.
관광객들의 동선을 생각하면 낮은 1패루쪽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을
텐데,
반대로 되어 있어서 스토리를 보기 위해 도로 맨 위로 올라간 다음 내려가면서 스토리를 보도록 한
구성은 인천시의 실수 같았습니다.
(물론 제 2패루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공자상을 먼저 보고 먹자
골목으로 내려갈 수 있겠지만
인천이 아닌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대개 1패루에서 관광을
시작할테니까요.)
ㄴ벽화는
총 47장이라서 부득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_ㅜ
그리고 벽화
구경을 좀 하고 다시 언덕으로 올라와 보니-_- 공자상이 나타납니다.
공자는 바다 건너로 넘어와 다시 바다 건너 중원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곡부 공씨(공자의 후손들)의 종손 되시는 분이
타이완에서 돌아가셨다는 보도가 있었죠.
사실 공자의 사상은 공산주의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야말로 ‘지배층만의 도리’ 로
비치기 때문에
문화 대혁명때까지 심하게 까이고, 그만큼 욕도 많이 먹어 왔죠. (자칫했으면 묘까지 파헤쳐질
뻔했다죠)
그랬던 중국을 지켜보면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녀석들…지켜보고 있다. 조심하거라
-┏”
음.. 어쨌든 중국 사상에 약간..의(!?) 재미를 가진
저는
공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진기를 들었습니다.
비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람이지만, 역시 위엄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공자가 살았던 당대의 서체인 전서로 ‘孔子’를 오른쪽부터 쓴 게 눈에 띄는군요.
(전서체를 보면 역시
한자가 센스 있다는 글자라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태아 두개골의 대천문을 머리에 탁 그었군요.-우측
글자)
그리고 공자의 위엄을 위해 카리스마 컷(?) 한 방
했습니다.
아, 근데 이게 무슨 비극(…)입니까, 갑자기 코 파는
공자님-,.-으로 변신했군요.
역시 앵글이 너무 높았나.
ㄴ(상기 사진은 위의
공자 석상과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믿고 싶어집니다….OTL)
국가 원수를 욕보이면 뭔가 성인(聖人)의 위엄에 흠집을 낸 것 같아 찔리는군요.
안되는데
ㅎㅎㅎ
꼭 이런 기믹입니다.
슈퍼패미콤으로 나왔던 제 4차 슈퍼로봇대전 컷입니다.
사실 겟타 1호의 겟타 빔은 배에서 나가는데, 그
자리에 마침 손가락(..)이 끼었지요.
저는 이것 때문에 겟타 빔이 손가락에서 나가는 줄 알았답니다. orz
삿대질하면 못써요
공자 상도 손가락이랑 코가 비슷한 자리에 끼어 버렸으니
원….-,.-
그리고 저는 공자 상에서 내려와 다시 해안가로
내려갔습니다.
이 길을 기준으로 중국인 거류지와 일본인 거류지가 나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화기 당시를 기념하기 위해 왼쪽 일본인 거류지 터에는 일본식 석등을,
오른쪽 중국인 거류지 터에는 중국식 석등을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 보니 왠지 동작대로를 기점으로 나뉜 영등포(=강서)와 강남이
떠오릅니다.
(오예 잠시 이야기가 묘향산삼천포로
나갑니다)
반수(半修)를 하기 전에 학적을 뒀던 학교를 가려면, 동작대로를 거쳐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 때마다 길 건너 방배동(강남)과 사당동(영등포)를 대조해서 보게
되지요.
가 보시면 잘 알겠지만, 동작대로 고층빌딩이니 뭐니 하고
새로 들어서는 건물은 몽땅 방배동에만
들어서고 있고요,
길 건너 사당동에는 소형 건물이랑 시장, 높은 건물이라고는 애경백화점이랑 씨너스 건물…이
전부입니다.
현재까지도 자행진행되고 있는 서울 내 강남
편중주의가 불러오는 모순이죠.
계속 그 길을 보면 많이 슬퍼집니다. 그리고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해 반감이 들기도
하고요.
비록 가족을 따라 강남이라는 공간에 거주하고는
있지만
그 바깥에서 우리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 반대로 우리가 그곳을 타지의
입장에 서서 보면 어떻게 보일까…
그런 복잡한 생각이 자주 듭니다. 에휴…자립할 때가 되면 빨리
자리를 떠야겠습니다.
참 모노레일 같은 소리입니다 -_-…하여간 길 하나에 건들 수 없는 커다란
작두를 놓은 것 같은 생각을 하면서,
저의 차이나타운 기행은 여기서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는 사거리가 나오고, 중구청 방향으로 걸어가면 일본식 가옥과
함께 역사의 거리로 꾸며져 있지만,
거기까지 염두에 두진 않아서 사진을 찍지 못햇네요.
그리고 너무 늦은 시각에 가서 주변 경치가 잘 안보이는 등 여러가지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미처 돌아보지 못한 부분도 많고.
다음은 제가 거친 곳들을 그림으로 나타낸 사진입니다.
외국의
차이나타운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져서 각종 범죄와 피해의 온상이 되는
등
역효과가 많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의 차이나타운은 아직까지 빽빽하기는커녕 성근 축에
속하니까
비교적 조용하고, 소박한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나중에 중국풍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번쯤 들러봐도 좋은, 그런
곳입니다.
이상 우츠카사(영산백)였습니다.
마지막 컷은 먹자 골목으로 장식하겠습니다. 아까 말한 만다복 말고도
싸고 좋은 곳 많으니, 식도락 여행을 와도 좋을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