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페르소나 5는 어떤 사람들을 비춘 게임이었나?
한 마디로 ‘일본에서 소외받았거나 받기 쉬운 사람들’을 비췄다고 생각해요. 비중 있는 조연, 이하 ‘코옵’은 설명이 길어질 테니 미루기로 하고, 괴도단과 모나에 대해서 써 보기로 할게요.
괴도단은 면면을 보면, 발을 담근 그 모두가 일본 사회에서, 혹시 한국 사회였다면 더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들이에요. 플레이어만 하더라도 고향에서 폭행죄를 뒤집어 쓰고 쫓겨난 자식이죠. 사실 정상적인 집안이라면 가족이 플레이어를 감쌌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내놓은 자식 취급이라는 거지요. 얼자孽子 아케치, 이혼가정 류지, 생모를 떠나 보내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된 후타바, 역시 같은 이유로 스승과 더부살이하는 유스케, 남은 한 쪽 친권자가 없는 것만 못한 하루, 모두 기성사회에서 정상가족의 형태에서 한참 밀려난 피해자들이죠. 마코토는 뭘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장성한 자녀가 한 명이라도 있는 부모세대 분들의 입장에서 니이지마 자매는 모두 ‘고아’라고 불러요. 특히 사에 같은 경우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50대 이상 장노년층이 플레이를 한다면 ‘소녀가장’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그나마 상대적으로 가장 형편이 나은 쪽이 안도노 정도인데 일본에서 인격 그 자체로 처절히 대상화(objectification)되곤 하는 구미계 혼혈이고 귀국자녀인데다 양친이 집을 거의 비우다피 하니 다른 의미로 정상성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죠. 모두가 취약계층으로 한데 뭉친 괴도단 전설은 어쩌면, 도쿄에서 그리는 브레멘의 음악대일 거예요.
만약 이런 청소년이 모두 도쿄에 실존한다면 공통적으로 궁예의 동정심, 그러니까 가엾어하는 척하며 사실은 더 가엾게 괴롭히고자 하는 가짜 동정심의 대상이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할 거예요. 학교 현장에서 가장 약하고 없는 아이들이 제일 먼저 왕따의 표적이 되듯이요. 플레이어부터가 전학 초에 왕따를 당하고 시작하는데요. 아까 전 그나마 가장 처지가 낫다던 안도노의 경우부터 이미 처절하게 대상화되고 심지어 교직원에게 모욕적인 단어를 들어 가며 버텨야 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일본에서 다문화자녀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처절한 대상화의 표적이에요. 방송에서 그들을 어찌 소비하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힘 없고 지지 못 받던 이들이 힘을 합쳐 세상을 황폐화하는 무리를 무찌른다는 서사가 일견 유치해 보여도 오랜 기간 동안 민중들에게 칭송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괴도단의 흥망 그 자체가 그걸 보여 주고요. 도쿄에서 쓰는 브레멘 음악대라고.
또, 그 덕분에 맨 처음 나오는 슈진고등학교의 팰리스와 그 주인 카모시다가 1라운드 보스로서의 역할을 정말 충실히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성 멤버 셋이 첫 관문을 통과하는 계기를 만들고, 덧붙여 1라운드를 견딘 관객들이 고진감래의 쾌감을 극적으로 느끼게 할 정도로 카모시다는 잘 짜여진 장치예요. 카모시다가 좋다는 뜻이 아니고요. 첫 팰리스 방법하는 그 순간까지 정말 괴롭고 가엾어서 계속 플레이 이어하기가 망설여졌는데 그걸 뚫고 나서는 저도 막혔던 속이 깨끗이 내려가던 느낌이었으니까요. 장치로서의 카모시다는 그런 사회의 약자를 각성하는 훌륭한 역할이지만 제작진은 그걸 자꾸 오해하는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잠시 후 따로 써 보기로 하죠.
다음으로 모르가나에 대해서 써 보기로 할게요. 가만 생각해 보면 그래도 싸지만, 끝날 때 즈음에야 모르가나가 거만한 태도, 명령조, 사회성 없음 등으로 비호감 캐릭터 취급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에 국전에서 한가득 쌓인 모르가나 네소베리를 본 게 이미 6월인데 그 광경이 아직도 똑같다는 걸 알게 된 게 겨우 몇 주 전. 다른 트친분 사진 보고 알았네요. 참고로 일본에선 원래 인형뽑기로 작년에 풀린 물건이에요😅
그럼 어째서 모르가나는 이렇게 비호감 캐릭터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모르가나는 왜 하필 고양이로 괴도단 앞에 나타났을까요?
모르가나는 고양이예요.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사람보다 밑으로 기려는 동물이 아니라 역으로 떠받들여지는 동물이에요. 문득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포스터가 실제 묘주의 항의를 받고 ‘고양이를 받드는’으로 수정된 사건이 생각나네요. 그런 한편 사람과 동료로서 공생하고자 하는 생물도 고양이죠. 전세계 각지에서 귀여운 외모로 이목도 끌지만, 쉽게 싫증을 받고 쉽게 버려지는 운명을 맞는 슬픈 동물이기도 하죠. 특히나 생태계 다양성이 떨어지는 도시 환경이라면 ‘길고양이’라는 단어로 해설이 되죠. 사람한테 복종하지 않고 대등해지고자 하고, 그러면서도 의리를 지키고, 귀여움을 받을 것 같으면서도 쉽게 미움받아 버려지는 이들의 운명은 딱 모르가나의 숙명 그 자체일 거예요.
모르가나의 사회성 없어 보이고 건방진 이미지는, 그 자체로 고양이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입장에서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고양이는 원래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존재라고. 그런 모나의 모습은 사회적 약자 청소년들의 모임인 괴도단에 안성맞춤이에요. 브레멘 음악대에도 고양이가 있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