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페르소나 5가 드러냈던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선 사회변혁의 방식에 대해서 문제를 짚고 싶어요. 이미 확장 후속작인 페5R 티저 일부에서 나온 대사이지만 ‘괴도단의 그 방식은 좋게 말해 개심이지 사실 세뇌 협박 그 자체잖아요?’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인게임 도중 시스템 메뉴에서 ‘줄거리 확인’이 항상 가능한데 팰리스에 들어갔다 나오는 대목을 모두 ‘범행’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말이 좋아서 마음을 훔친다고 하는 거지 사실상 사람 마음을 헤집어 놓는 범죄에 가까움을 스스로도 긍정하는 셈이죠. 엄밀히 말해 인지세계를 오가며 벌이는 짓들을 현실세계에서는 증거가 안 남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삼을 수 없긴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멋대로 충동질하고 생각을 멋대로 바꿔 놓는 것은 법 이전에 사회의 도덕 윤리 측면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죠. 초등학교만 다녀 봐도 남의 마음을 멋대로 주무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고 나올 텐데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정당한 법과 공무집행 없이 제재하는 것이니까요.
페르소나 5 이전부터 ‘괴도’와 ‘의적’을 표방한 이들이 민중의 지지를 얻으면서도 일정 이상 힘을 얻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런 모순점 때문일 거예요. 모두를 위해 저지르는 절도와 살인은 절도와 살인이라는 인류의 공정 가치 위반이라는 점에서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 되죠. 작품에서는 공권력이 엄존하여 결국 괴도단의 이 방식은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남기고자 노력한 흔적도 보이지만, 그 공권력이 사실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핑계도 같이 남기는 바람에 사실상 괴도단을 비호하는 모양새가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달리 ‘만들다 말았다’라는 평이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은 부분이, “이 다음은 어른에게 맡기렴.”이라는 대사의 존재와 최종 팰리스 공략 이후의 내용 전개였죠. 괴도단의 작중 행적을 하나의 ‘사회 혁명’이라고 부르려면 사회가 유의미하게 바뀐 모습을 이끌어 내야만 하는데, 작중 그려낸 시간적 배경의 한계도 그렇고 괴도단의 행적이 품을밖에 없는 모순으로 인해 그 다음을 정말로 어른들에게 맡겨 둬야 하는 찜찜한 마무리가 됐어요.
용 그림을 그리고 용 눈에 눈동자를 안 그린 것만 같은 찜찜함.
페5R과 페5S라는 스핀오프 및 보강판이 따로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공식에서 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니 기대보다는 좀 씁쓸함이 남네요. 일곱 여덟째 팰리스 들어갔을 때는 분명 이 게임의 마지막을 보고 개운한 느낌으로 이 타래를 쓰리라 믿었는데. 😓 페4의 경우 엔딩의 평이 더 양호하다는 점에서 뒷맛이 더 그러네요. (아직 페4 플레이를 못 마쳤으므로 평가는 건너뛰겠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페르소나 장르 파시는 분들이 마르고 닳도록 성토하시는 작중 젠더혐오 문제에 대해서 써 볼게요. 다른 부분도 많지만 이미 진작 그로기 상태로 빠진 대목도 많으므로 저는 건너뛰기로 하고, 네 번째 팰리스를 방법하고 다섯 번째로 넘어가기 직전, 시간으로는 2학기 초반까지의 대목이에요.
작중에서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고 다른 활동을 넣었어도 될 일인데, 남성멤버들의 해변 플러팅을, 그것도 한 번만도 아니고 두 번의 해수욕장 마당에서 한 번씩 두 번이나 그려내는 부분은 도대체 무슨 의도예요? 남성진 사실상 전원이 여기에 동참하기 때문에, 공리를 위해 나를 버린다고 하는 플레이어의 작중 행적과도 지극히 위배되는 행적인이에요. 그런데 거기다 선택지라고 나오는 질문지도 모두 같은 내용으로 넣어 외통수 루트를 만들어 놓았어요. 넘어가고 싶은 질문지를 넘어가지 못하고 견디게 만드는 거 얼마나 엿 같은지 아세요? 아니 남자들도 자기 갈 길 걸어가는데 “도를 아십니까?”로 걸고 넘어지고, “야 사랑해. 놀다 가!” 소리 듣고 기분 좋을 사람 없어요. 젠더 문제 신경 쓰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불쾌하고, ‘얘네 왜 이래’라는 생각부터 들고, 바다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좋은 이벤트 놔두고 이걸 짧은 플탐에 반복해서 그리는 것도 작위적이에요. 사람들한테 나쁜 자극 주고 기분 나빠하는 걸 즐기는 아틀라스 공식은 가학주의자들이에요?
괜히 공식이 가학주의자들이라고 하는 게 아니고, 이런 항의를 꺼낼 수밖에 없게 하는 부분이 또 있어요. 이전 파트에서 썼었던 ‘1라운드 보스로서의 역할에 매우 충실한 카모시다’에 대해서인데요. 제가 앞에서 썼던 카모시다를 정말 잘 만들었다고 한 부분은 카모시다가 온몸으로 발산하는 기분 나쁜 언행과 행적,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주변인의 극단적 선택, 첫 관문의 심리적 장벽을 올려 그것을 돌파했을 때의 자신감과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1라운드 보스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서이지, 캐릭터가 멋있고 귀엽고 매력 넘쳐서가 절대 아니거든요. 페5 플레이를 마친 다른 분들도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고요.
그런데 스핀오프작에 출연을 왜 시키고 굿즈를 구태여 왜 만들어요? 제작진은 플레이어와 팬들이 기분 나쁜 걸 보고 괴로워하거나 표정 찡그리는 거 보는 게 그렇게 좋아요? 사람을 우롱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즐기는 판매자는 상도의의 측면에서 장사를 하면 안 되죠. 그건 사기꾼이지 사업가가 아니에요. 여태까지 수많은 게임 제작진들을 경험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사디스틱한 태도가 현저히 드러나는 공식은 처음이에요. 그렇게 개심! 개심! 비뚤어진 욕망을, 받아간다! 타령을 하는 작품을 내면서 정작 그런 비뚤어진 욕망을 압수당할 개심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은 자신들이란 점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고요.
(카모시다 이야기만으로도 쏟아지는 총 트윗이 메멘토스 총 층수급)
페르소나나 여신전생 본가에 오래 머무르시던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바로 페르소나 넘버링이 뒤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진다……라는 점인데, 혹시 그 이유가 이런 게이머를 우롱하는 태도와 언행 때문은 아닌지 반성이라도 하면 다행일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동어반복이 될 수도 있지만 괴도단원의 그 이후에 대해서예요. 결론을 미리 맞춰 두고 쓸게요. 페르소나 5는 일본 작품 특유의 ‘뛰어 봤자 벼룩‘ 서사에서 한 발짝도 못 나아갔어요.
제가 즐겨 쓰는 표현인 ‘뛰어 봤자 벼룩’서사란, 어떤 처지에 놓였던 주요 등장인물들이 어떤 처지를 극복하지 못한 채로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제자리를 맴돌거나, 현실에서는 어떤 설정을 지닌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면모를 보였지만 결국 현실의 사람처럼 순응하는 마무리를 맞는 서사를 의미해요.
마지막 엔딩(굿 엔딩 분기 기준)을 보면 결국 괴도단의 멤버들은 처음 상태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졌음을 알 수 있어요. 뭐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요. 페르소나 5에서 말하고 싶었던 가치는 ‘누가 뭐래도 내 자유의지에 따라 살고 무슨 운명을 맞아도 나는 나로 살자’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극복이라고 하긴 힘드니까, 과거에 시달리던 부조리를 똑같이 견뎌내야 한단 점에선 뛰어 봤자 벼룩이 된 셈이죠. 세상을 놀래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세상을 바꾸었느냐는……좀 회의적이네요. 사람은 달라졌지만 그건 코옵들 한정이고, 결국 세상이 달라졌는지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당사자들이 ‘아 괜찮아요 저흰~’하면 그럭저럭 나쁘지만은 않은 결론이지만, 과연 정말로 괜찮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어요. 특히 여단원들은,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대상화되어야 하는 운명을 걸을 가능성이 낮지 않은데, 그래도 버텨내기를 바랄 밖에 없다면 좀 걱정부터 드는 부분이에요. 적어도 이걸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하더라도 철벽처럼 튕기고 끄떡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