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5 (무인판) 총평.

노들 영산

페르소나 5 (무인판)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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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페르소나 5는 너님한테 어떤 게임이었나?

한 마디로는 정의내리기 조금 힘드네요. 여신전생 시리즈의 다른 작품군이라면 한참 더 위로 올라가지만, 순수히 페르소나 시리즈만으로 치자면 존재를 알고 의무감을 가지기 시작한 때가 2009년, 십 년 좀 더 전이었어요. 니코니코 동화에서 모음곡이 유행할 때 동영상 삭제 안내 배경음악으로 페르소나 4의 전투음악인 Reach out to the truth가 나왔었어요. 그래서 ‘일곱 빛깔의 니코니코 동화’의 마지막 음악으로 인용되었었죠.

※참고자료

10분 56초부터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당시 니코니코동화에서는 실제로 이 노래를 삭제된 영상 안내 배경음악으로 썼습니다.

거기에 페르소나 4의 몇몇 설정을 건녀편에서 엿들으며 조금씩 의무감을 쌓아나가기 시작했지만, 그때 저한테 플레이스테이션 2가 없었기 때문에 넘을 수 없는 의무사항으로 멀리서 꿈만 꿀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도쿄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으면서 페르소나 4 골든과 비타를 사는 기회를 누렸지만, 플레이 시작 시점이 귀국 직전 몇 달 전이었어서 오래 진행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을 미루다가 페르소나 5가 나올 때까지 클리어를 하는 데 실패했어서, 페르소나 5야말로 저한테 무겁게 지워져 있던 의무였습니다. 그동안 페르소나 시리즈를 잡고 있던 친구나 지인들은 막상 “네가 이 게임의 엔딩까지 가는 순간 허탈함에 빠져서 정신줄을 잡기 힘들 것이다.” 라는 말 등으로 플레이 속행을 권하기를 주저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의무감 하나를 덜어 놓고 나니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고, 마냥 좋고 기쁘지만은 않아서 여전히 씁씁한 뒷맛이 남네요.

분명히 기대했었던 만큼 사람을 다루고 인본주의 사상 기반에 따른 인간 찬가와 비판을 노래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 넘치는 요소였지만, 그런 팬들을 우롱하는 작품 제작과 관련상품 발매 행적(바로 앞 페이지 참조), 해피하지만은 않은 뒷처리, 자연스럽지도 않고 성 인지 감수성 측면에서도 건전하지 않은 등장인물의 언행은 과연 이 작품을 자랑스럽게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집니다.

그렇다고 마냥 미워하기에는 인생에서 비중 큰 최애가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에 미치지 않더라도 개개인별로 사랑스러운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는 점이 저를 망설이게 하네요. 플레이어를 포함한 괴도단 일행이 트릭스터 아니랄까 봐, 참말 악마의 유혹이에요. 그나마 남들 다 하고 잊은 게임을 뒤늦게나마, 이제라도 마친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무척 후련하네요. 이 쪽 이야기를 하실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더 오래 나오실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늦은 사람의 책무죠. 어쩔 수 없어요.

우울해지는 이야기 너무 오래 남기는 것도 안 좋으니까요 ㅎㅎ…… 개인적인 기록실 측면에서 페르소나 5를 이야기해 보자면요, 제 게임 플레이에서 무척 경이로운 기록 여럿을 안겨 준 게임이에요.

  1. 우선, 페르소나 5는 제가 잡아본 거의 모든 RPG 중에서 엔딩까지 제대로 마친 오랜만의 RPG 게임이에요. 페5 이전 가장 최근의 기록이 2002년…그러니까 17년 전의 쯔바이1이네요.
  2. 또, 출시되고 3년 이내에 직접 사서 잡은 콘솔 게임으로서는 19년만에 엔딩까지 마친 게임이에요. 중간의 공백기가 좀 많이 길었기 때문이어서. 가장 최근의 기록이 메가드라이브판(제네시스) 파워레인저 더 무비였어요. 기억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20년 전일 수도 있어요.
  3. 다른 사람과의 분할 플레이 없이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시작부터 엔딩까지 간 RPG라는 의의도 있고요. 이 게임을 하고 무척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요.
  4. 아, 공략을 안 보고 가장 진도를 많이 뺀 게임이기도 해요. 아예 안 본 것은 아니고 2학기 첫 팰리스인 다섯 번째 팰리스 보스전부터 공략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이 정도라면 스토리의 반 이상은 완연히 홀로 뚫었다고 해도 되잖아요.😅 덕택에 올코옵 맥스나 모든 메멘토스 의뢰 해결 같은 거창한 업적 달성은 못 했지만, 첫 도전에 배부르긴 힘드니까요(힐끗).

앞으로도 콘솔 게임을 해낼 수 있다는, 여러 측면에서 첫 시작을 띄워 준 제 게임 인생의 마중물을 만난 기분이에요. 후속 확장팩들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의무로 남아 있는 전작들이나 아예 다른 장르들, 특히 최근의 게임들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네요. 괴도단원들이 사람들을 개심시키면서 그들 스스로도 개심하게 되었지만, 특히 애정캐인 플레이어(부르는 이름이 아주 많아요. 근래엔 ‘렌쨩’이라고 많이 부르고 이 타래에서는 플레이어라고 부를게요)를 사랑하면서 저도 플레이어한테 개심된 것 같은 기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