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정조대왕의 사도세자 능행길(화성행궁길)이 그 기원일 것입니다. 한양도성에서 노들나루, 노들나루에서 시흥(오늘날 영등포권 일체), 안양(만안구), 군포, 의왕을 거쳐 수원화성에 닿는 경로가 바로 그것이죠. 이들 지역은 일본제국의 개입으로 지어진 경부선 기찻길의 코스로도 포함되며 노들 영산의 THE WORLD: 한강 이남 수도권의 두 세계에서 선봰 지도의 녹색 지역의 도시권을 형성하게 됩니다. 지도 확인하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선왕이자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을 슬퍼하여 오래도록 사도세자의 문안을 드리며 이를 기렸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수원화성도 사도세자와 깊은 관계가 있죠.
정조는 즉위 후 항상 능행길을 이용했습니다. 다음 사진자료에서,
- 조선을 달리던 주요 간선도로인 원래 삼남대로상의 능행길 코스가 금색,
- 을묘년(서기 1795년)부터 채택해 사용한 능행길 코스가 남색입니다.
대조해 보면,
- 원래 삼남대로상 코스는 오늘날 수도권 전철 4호선과 동작대로를 따르는데,
- 을묘년부터 채택해 이용한 코스는 후일 유사구간에 경부선 철도(1호선)가 부설되고 여의대방로-시흥대로가 달리는 구간을 따릅니다.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의 성묘와 문안을 위해 이 신작로를 정비하고 일반인들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한반도에서 귀한 평지코스가 되었죠.
이후 일본제국이 조선 왕조를 병탄하고 한국 땅 안의 철도 부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일본제국은 기찻길을 지을 때 들 돈과 시간을 아끼고 싶어했습니다. 이를 위해 조선의 전통적인 간선도로 코스(동작대로 및 과천 경유) 대신 이 을묘 능행길과 비슷한 코스를 따라 철도를 부설하는데, 이것이 바로 수도권 전철 1호선 신창 방면 선로입니다. 또한 먼저 개통해 열차가 달리던 경인철도 구간을 재탕하고 안양천(안춘천철교. 오늘날 구일역)이 나올까 말까 하는 코 끝에서야 경인선과의 분기선을 땄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구로 분기입니다.
능행길은 오늘날 군포시에 해당하는 땅에서 원래 삼남로와 다시 만나 이어집니다. 오늘날 1·4호선이 서울역 및 용산 이후로 다시 만나는 금정역이 인접한 곳이지요. 삼남대로는 충청·호남·영남 지방을 전부 거치는 길이었지만 부산으로 향하는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전통적인 간선도로 코스를 반영하여 기찻길을 깔려면 이후 코스는 호남선 기찻길을 위해 사용하고, 경부선 기찻길은 오늘날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코스에 더 가깝게 깔아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일본제국은 전쟁 수행과 대륙 침탈을 하려는데 그런 사정을 고려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고, 따라서 영남과 호남으로 향하는 기찻길을 삼남대로길 한 가닥만으로 퉁을 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서울에서 대전까지 경부선과 호남선이 모두 한 노선을 달리는 원인이 됩니다.
참고: 한국을 일거에 장악한 일본의 지렛대
경부고속철도가 2004년에 일부 구간이 준공되고 처음 고속열차 KTX가 데뷔했지만, 지금도 KTX는 서울시내에서 서울역부터 금천구청역까지 옛 경부선 철도를 그대로 달리고 있습니다. 이는 ITX-새마을 및 무궁화호 등 기존 일반열차의 배차간격을 늘려놓고, KTX 편성량에도 한계가 걸리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수색-광명 간 KTX 전용신선 계획이 입안돼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습니다. 새 노선이 이대로 확정돼 착공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일본제국이 개입한 기존 코스보다 정조의 능행길 코스에 더욱 흡사해졌습니다.
대방천 복개로 및 시흥대로 하부를 통과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렇게 하면 노들나루에서 만양고개를 건너 장승배기부터 대방천과 시흥대로를 따라 행차한 정조의 을묘 능행길 코스와 거의 같습니다. 영등포역 하부를 지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기지만, 정조대왕이 이 사실을 안다면 감개무량하게 생각하겠지요.